정수기 얼고 입김 후후…“이 정돈 안 춥죠” 물류센터 뜨거운 생업 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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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1월 23일 11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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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전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현장. 작업자들이 지역별로 택배를 분류하고 있다. 2024.1.23/ 뉴스1
23일 오전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현장. 작업자들이 지역별로 택배를 분류하고 있다. 2024.1.23/ 뉴스1
‘영하 14도’

23일 오전 6시 서울 송파구 장지동에 있는 동남권 물류센터에 도착해서 확인한 기온이다. 전국 대부분 지방에 한파특보가 내려졌고 사무실 안쪽에 꽁꽁 얼어버린 정수기가 한파 강도를 짐작하게 했다.

◇ “바람도 안 불고 눈 안와서 다행”…‘보온병·핫팩’ 버팀목

작업장 한 구석에 놓여있는 정수기. 반쯤 채워진 물이 전부 꽁꽁 얼어있다. 2024.1.23/ 뉴스1
작업장 한 구석에 놓여있는 정수기. 반쯤 채워진 물이 전부 꽁꽁 얼어있다. 2024.1.23/ 뉴스1
하지만 올해로 15년차라는 택배기사 고모씨(55)는 “오늘은 바람이 안 불어서 그런지 별로 안 춥다”면서도 “눈은 빨리 떴는데 몸이 안 따라와서 조금 늦게 일어났다”고 했다.

20년차 택배기사 김모씨(59)는 “그래도 여기는 지붕이 있어서 따뜻한 편”이라며 “경기도 광주에만 가도 완전히 노지에서 택배 분류작업을 하는 데도 있다. 거기서는 아주 고생이 심할 것”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춥지 않다’고는 하지만 상차 작업 현장 그 어디에도 온풍기나 난방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작업자들은 손이 시려울 때면 회사로부터 지급받은 핫팩 2개를 주머니에 넣고 추위를 견디고 있었다.

김씨는 “사무실 안 정수기도 얼어 있다”며 “그래서 이런 날은 각자 다 보온병 하나씩 챙겨서 출근한다”고 말했다. 아침 식사는 걸러도 물을 뜨겁게 데워 보온병을 채우는 일만은 잊지 않는다.

택배기사 한모씨(44)는 “옷을 최대한 두껍게 입는 방법밖에 없다”며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니까 나오는 것”이라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김씨는 “오늘은 눈이 안 와서 그나마 다행이다”며 “옛날에는 택배 일이 더 힘들었다. 요새 젊은 사람들이 취업이 안 돼서 그런지 여기로 많이 들어오는 것 같더라”고 했다.


◇ ‘화요일’ 가장 바빠…설 앞두고 물량 급증


동남권 물류센터 근로자들이 택배를 한쪽에 적재하고 있다. 2024.1.23/ 뉴스1
동남권 물류센터 근로자들이 택배를 한쪽에 적재하고 있다. 2024.1.23/ 뉴스1
물류센터가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요일은 바로 ‘화요일’이다. 통상 주말 동안 밀린 택배 물량이 월요일에 한꺼번에 물류센터로 들어오기 때문에 월요일 저녁부터 화요일 아침까지가 가장 물량이 많다.

어제 저녁부터 밤새 도착한 택배 물량을 지역별로 구분하고 분류하고 적재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작업자들은 저마다 두꺼운 패딩과 발목까지 오는 부츠나 등산화로 무장하고 목장갑을 낀 채 택배를 옮기는 데 여념이 없었다. 털 귀마개나 마스크, 후드모자로 얼굴과 머리를 보호한 사람들도 많았다.

빈 택배차량 위에서 컵라면으로 황급히 요기를 하던 A씨는 이날 오전 5시20분에 출근했다고 했다. 기자가 다가가자 “나는 관리자라서 빨리 가서 직원들 모으고 일해야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택배 분류 작업을 하는 박모씨(40대 후반)는 “어제 저녁 5시30분부터 일하기 시작했다”며 “보통 월요일엔 12시간, 13시간 정도 일한다”고 말했다.

다른 구역에서 택배상자를 적재하던 김동호씨(53)는 “구정(설)이 다가오니까 최근 택배 물량이 더 늘어났다”며 “과일상자나 선물세트도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김씨는 올해로 물류센터에서 근무한지 18년째다. 그는 “나 정도는 연차가 높은 편도 아니다”며 “저기 형님은 더 오래됐다”고 옆 작업자를 가리켰다.

김씨는 “어제부터 많이 추웠는데 힘드시진 않으냐”는 질문에 “힘들어도 어떡하나”며 “먹고 살려면 일해야 한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동료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죽을 맛이다”고 덧붙였다.

◇ 잡담할 시간 없어…20%는 외국인 노동자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전경 2024.1.23/뉴스1
서울 동남권 물류센터 전경 2024.1.23/뉴스1
장지동 물류센터로 오는 택배들은 주로 서울과 경기도 동남권 지역으로 가야 하는 택배들이다. 전국에서 온 택배 짐을 한쪽에 내리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택배가 반대편 너머로 이동한다. 상차와 하차 작업이 파트별로 나눠져 있어서 각 구역 작업자들의 역할이 분명하다.

분류 작업자들이 택배 물량을 지역별로 곳곳에 적재해 놓으면 오전 6시30분쯤부터 택배 기사들이 속속 도착해 차량에 물건들을 싣기 시작한다. 먼저 허리까지 오는 레일을 길게 깔아놓고 택배들을 그 위에 죽 늘어놓으면 기사들이 양쪽에 늘어서서 빠르게 각자 담당 지역의 택배들을 골라낸다.

작업자들과 기사들 모두 서로 필요한 말 외에는 잡담을 거의 나누지 않고 일에 집중하는 분위기였다. 물량이 많은 만큼 상차 작업을 신속히 끝내기 위해 추위도 잊은 모습이었다.

택배 분류 작업을 하는 정모씨(60)는 한때 보험회사에서 일했지만 직장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망해 물류센터로 들어왔다고 했다. 정씨는 “나이는 먹었지 취직은 안 되지 그래서 이 일을 하게 됐다”며 “저녁에 나와서 아침에 들어가고 완전히 생활리듬이 반대되는 일이라 가족들도 안쓰러워 한다”고 전했다.

현장 곳곳에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꽤 많았다. 30명 정도로 이뤄진 한 구역에 6명 있는 식이었다. 기자가 다가가면 대부분 친절하게 인사를 받아줬지만 한국어를 잘 못한다며 의사소통에 난색을 표했다.

한국에 자동차공학을 공부하러 왔다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유학생 아브롤(20)은 “여기서 7개월 일했다”며 “18살 때 한국에 처음 왔는데 가족들을 오랫동안 못 봐서 많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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