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홍말미잘 제거, 제주 바다에 득일까 독일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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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 집단 폐사 원인으로 지목돼, 2021년부터 유해생물 퇴치 작업
말미잘 없으면 새우-게도 사라져
생태계 교란할 수 있다는 우려도
도 “연산호군락 위한 해결책 마련”

제주 연안의 해송이나 절벽에 붙어서 사는 담홍말미잘.
제주 연안의 해송이나 절벽에 붙어서 사는 담홍말미잘.
제주 서귀포시 서귀포항 동방파제에서 남쪽으로 600m가량 떨어진 문섬. 정상에 항로표지 등대가 있어서 여느 무인도와 다를 바 없지만 수중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분홍수지맨드라미, 가시수지맨드라미, 해송 등 다양한 연산호로 울긋불긋 수중 정원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제주연안 연산호군락’의 핵심 지역일 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스쿠버다이빙 포인트이다. 수중 조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연산호는 부드러운 줄기구조를 가진 산호를 말한다.

제주 서귀포시 문섬 일대에서 한 다이버가 해송에 기생하는 보키반타이끼벌레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김병일 씨 제공
제주 서귀포시 문섬 일대에서 한 다이버가 해송에 기생하는 보키반타이끼벌레를 제거하는 작업을 했다. 김병일 씨 제공
이 지역에서 수중 유해생물로 지적된 ‘담홍말미잘’ 제거 작업을 놓고 논쟁이 생겼다. 국내 스쿠버다이버 12명은 최근 문섬 일대에서 담홍말미잘 등의 제거 작업을 벌였다. 연산호의 일종으로 멸종위기인 긴가지해송, 해송에 달라붙어 고사시킨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담홍말미잘 하나만을 제거했을 때 오히려 생태계를 교란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국내 한 환경단체는 2020년 5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문섬 동쪽 수심 20∼30m 사이에서 해송 집단 폐사를 확인했으며 해송의 뿌리, 줄기와 가지에 부착한 담홍말미잘은 점점 서식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며 “담홍말미잘의 기생으로 해송은 제대로 영양을 공급받지 못하고 앙상하게 말라죽고 있었다”고 밝혔다. 이 단체의 지적 등에 따라 2021년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 내 유해 해양생물 제거 및 서식환경개선 사업 보고서’가 제출됐고, 2021년에 이어 2022년에 유해 해양생물 제거 작업이 이뤄졌다.

문제는 담홍말미잘을 유해 해양생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담홍말미잘은 생김새가 해바라기와 비슷하다. 길이 3∼4cm로 소나무처럼 생긴 연산호인 해송에 기생해서 살다가 해송이 고사하면 스스로 떨어져 이동한다. 서식하는 주요 수심대는 30∼40m로 조류가 강한 절벽에서 주로 관찰된다.

담홍말미잘이 해송에 기생해서 고사시키는 것은 대부분 해양학자들이 인정하고 있지만 생태계 먹이사슬의 한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담홍말미잘을 제거할 경우 담홍말미잘과 공생관계에 있는 희귀 새우, 게 등도 사라지면서 생태계 균형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말미잘은 조류에 나풀거리는 촉수의 모습이 마치 꽃과 같다고 해서 ‘바다의 아네모네’로도 불리는데 다양한 생물과 공생하면서 수중 생태계의 한 영역을 이루고 있다.

해양생물학자인 제종길 박사는 “해양생태계에서 유해생물을 지정하고, 제거하는 데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대상 해역의 수질환경 변화는 물론이고 유해생물의 천적, 어류 개체군 변동, 유해생물의 생존율을 결정하는 환경요인과 먹이생물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간 문섬 일대에서 수중 생태를 관찰한 한 다이버는 “수중 온도의 상승, 조류의 변화 등으로 인해 서귀포 앞바다의 수중 생태계가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특정 생물을 제거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발상이다”며 “불가사리를 해적생물로 규정하고 제주 연안의 해양환경 개선에 도움을 주는 거미불가사리와 빨강불가사리 등도 무차별로 잡아 올린 시행착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관계자는 “2년에 걸쳐 담홍말미잘, 보키반타이끼벌레 등의 제거 작업을 실시했는데 이런 일시적인 작업이 해양생태계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이에 따라 장기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해 예산 2억 원을 들여 ‘제주연산호군락 보전관리계획’ 수립을 위한 용역을 7월에 발주해 내년 최종 보고서를 받을 예정이다.

문화재청 자료에 따르면 제주 연안 해역에는 한국산 산호충류 132종 가운데 92종이 서식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66종은 제주 해역에서만 서식하는 특산종으로 수심 10∼30m의 암반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문섬을 비롯해 범섬, 송악산, 차귀도, 지귀도 등이 연산호 군락지로 유명하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제주#담홍말미잘#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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