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마다 낙우송 밑에서 만나”… 약속 지킨 학생들, 선생님 추억하며 3번째 동창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0월 12일 14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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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오전 11시 광주 남구 양림동 수피아 여고 교정에 13회 졸업생을 비롯해 선후배들이 모영 낙우송 기념식수 60주년 모교 방문행사를 갖고 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11일 광주 남구 양림동 수피아여고 교정. 할머니 26명이 낙우송(落羽松)밑에 기념식수 60주년 행사를 가졌다. 할머니들은 꿈 많던 여고 1학년 시절인 1963년 높이 1m가량인 어린 낙우송을 심었다. 이후 20년에 한번씩 낙우송 밑에 모이는 동창회를 열었다. 이런 동창회가 벌써 3번째다. 60년이 흘렀고 소녀들은 할머니가 됐다.

낙우송 동창회가 만들어진 계기는 뭘까. 1963년 1학년 C반 한덕선 담임교사는 미국 소설가 오 헨리의 단편소설 ‘20년 후’를 자주 읽어주며 제자들에게 20년 후 자화상을 그려보라고 했다. 단편소설 ‘20년 후’는 절친한 친구가 20년 만에 만났지만 우정과 사회 정의를 고민하다 정의를 선택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고인이 된 한 교사는 제자들과 함께 20년 후를 생각하며 ‘남을 위한 삶’이라는 꽃말을 가진 낙우송을 교정에 심었다. 사제(師弟)들은 낙우송을 심은 뒤 20년 후 나무 밑에 모이기로 약속했다.

이들은 1983년 높이 9m, 밑둘레 1m로 자란 낙우송 밑에 모여 ‘바르고 아름답게 살겠다’는 글이 적힌 표지석을 세웠다. 이어 2003년에도 높이 16m로 자란 낙우송 밑에 2번째 표지석을 세웠다. 이날 세운 3번째 표지석에는 ‘20년 후 자화상 그리기를 전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3번째 모임에는 3년 전 한 교사가 작고해 큰 딸이 대신 참석했다. 너무 크게 자란 낙우송도 간벌을 해 높이 12m로 낮아졌지만 밑둘레는 2.3m로 두꺼워졌다.

낙우송 밑에 20년마다 모이는 동창회는 1963년 당시 수피아 여고 1학년이던 13회 졸업생 전체가 참여하고 있다.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77·13회 졸업생)는 “교정에 심은 낙우송은 서로의 마음을 잇는 힘이 됐다. 커가는 낙우송에 기댄 20년 후 자화상 그리기가 미래를 가꾸는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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