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5성급 호텔에서 잘 나가던 셰프, 문 박차고 나간 이유 [따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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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10월 5일 12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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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미얀마 레스토랑 ‘칠루칠루’ 최용수 대표

㈜위커즈러브 최용수 대표. 본인 제공.
㈜위커즈러브 최용수 대표. 본인 제공.
“인도의 한 거리에서 내다 버린 음식을 주워 먹는 사람을 보고 결심했습니다. 가치 있는 음식을 만들고 전하자고요.”

㈜위커즈러브의 최용수 대표(39)는 미래가 촉망된 요리사였다. 한국에서 조리예술학과를 다닌 뒤 캐나다 요리학교로 진학해 토론토에서 힐튼, 샹그릴라와 같은 5성급 호텔에서 10여 년간 근무했다. 그는 호텔 총주방장을 꿈꾸며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마음에 제동이 걸렸다. 돈도 부족함 없이 벌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살고 있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가 만든 ‘음식’ 때문이었다.

“호텔 음식은 위생상 하루가 지나면 모두 버려요. 그런 걸 보면, 솔직히 아깝잖아요. 누군가에겐 필요한 음식일 수 있는데 그냥 버려지니까요. 호텔에서 비싸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며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내가 만든 요리가 과연 바른 요리일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질적인 기부로도 그 마음은 후련해지지 않아 인도로 봉사활동을 떠났다. 그곳에서 길거리에 떨어진 음식도 주워 먹는 사람들을 보는 등 심한 빈부격차를 경험한 그는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기 시작했다.
최용수 대표(맨앞)는 미얀마에서 현지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요리를 가르쳤다. 본인 제공.
최용수 대표(맨앞)는 미얀마에서 현지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요리를 가르쳤다. 본인 제공.

그곳은 바로 미얀마였다. 미얀마 양곤에 있는 중퇴 청소년 식음료 전문 직업 훈련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선생을 찾고 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미얀마에서 공교육을 받는 아이들 중 89%가 중퇴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경제적 상황이 악화돼 아이들의 가정에까지 영향을 미치니 교육을 끝까지 받을 수 없어요. 국가적으로도 큰 문제 중 하나여서, 코이카(KOICA) 등과 협력해 ‘취업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저는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된 거죠. 2018년부터 2년 가까이 아이들과 함께했는데 아직도 연락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호텔 요리사가 되기도 하고, 크루즈 선박 요리사로 일을 구했더라고요. 이젠 저보다 돈을 많이 벌 걸요? 하하.”

“외국인 노동자였던 시절 있어…누구보다 그들 마음을 잘 안다”
2020년 한국으로 돌아온 최 대표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과 미얀마에서 레스토랑을 열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와 연이어 터진 미얀마 군부 쿠데타 때문에 길이 막혀버렸다. 그러던 중 국내에 많은 이주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들의 일터 마련을 위해 국내에서 식당을 열기로 결심했다. 그곳이 바로 ‘칠루칠루’다.

그는 “한국에서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선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 내가 외국인 노동자였지 않나. 그 때문에 누구보다 그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며 “또한 여러 빈민촌을 다니면서 ‘사람은 동등한 존재’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어떤 나라 사람이든 열심히 일할 의지가 있다면 뽑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칠루칠루
사진제공=칠루칠루

미얀마어로 ‘사랑해서, 사랑해서’라는 의미를 가진 ‘칠루칠루’는 지난해 11월 오픈했다. 최 대표는 식당을 열고 나서 직장을 구하기 어려운 이주노동자와 소외계층 등에게 요리 등을 교육시키며 함께 일해 왔다.

미얀마에서 온 직원 중에는 어머니가 한국에서 민주화 운동을 해, 자신과 동생이 위험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국대사관을 통해 무사히 들어오게 됐고 최 대표와 연결돼 식당에서 일하게 돼 현재 고등학교까지 다니고 있다.

또한 해외 송금이 막혀 생활고를 겪고 있는 미얀마 유학생을 단기로 고용해 생활을 유지하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왔고 또 정치 난민이 돼 급하게 한국으로 온 한 미얀마인도 최 대표가 3~4개월간 요리를 가르치며 한국 생활 적응을 도왔다.

현재 ‘칠루칠루’에서 일하고 있는 직원 미얀마인은 3명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절반 가까이 되던 때도 있었지만, 경력을 쌓고 이직하거나 적성에 맞지 않아 나가는 이들도 있었다. 이 와중에 2명은 공부하라며 해고가 아닌 휴직을 시켰다. 최 대표는 “‘식구’ 같은 아이들을 자를 수가 없더라”며 “차라리 내가 일을 하나 더 해서 돈을 버는 것이 더 편하다”고 말했다.
사진제공=칠루칠루
사진제공=칠루칠루

실제로 김 대표는 ‘칠루칠루’ 외에도 조식 케이터링, 카페, 밀키트 사업 등으로 이들의 일자리를 지켜나가고 있었다. 그는 “컨설턴트를 만나면 ‘어떻게 이렇게 경영을 하냐’며 혼이 난다”며 “그래도 저는 ‘돈’보다 ‘사람’이 더 귀해서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 대표는 미얀마 상황이 나아지면, 정치 난민 등 한국으로 오는 이들의 고용을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또한 한국뿐만 아니라 캐나다 등 해외로 진출해 소외계층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 대표는 앞으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의 연령층을 조금 더 넓히기로 했다. 고령화 사회가 돼가는 한국에 일자리가 필요한 노년층과 첫 사회에 나와 막막한 자립준비청년들도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식당을 운영해 보니 아이들의 지식과 어르신들의 지혜가 필요하더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에게 요리를 가르치면서 습득하는 속도가 빠른 걸 알게 됐다. 저희 때와는 다른 지식을 배우기도 한다”며 “더불어 오랜 세월을 보내신 어르신들의 삶의 지혜는 누구도 줄 수 없지 않나. 함께 일하면서 지식과 지혜를 공유하며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혐오’, ‘차별’, ‘증오’ 등의 단어를 많이 보게 되는 데 참 마음이 안타까워요. 사회가 우리에게 더 배려하고 사랑하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전 세대가 배려하고 사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누군가 작은 시작을 한다면, 점점 많은 사람이 서로를 보살피며 살지 않을까요? 저도 이제 한 걸음 내디뎠고 계속 나아갈 생각입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조유경 동아닷컴 기자 polaris2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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