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꽁꽁’ 숨어버린 은둔 청년들…“잠긴 문 여는 열쇠는 결국 사람”[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2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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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건강, 정서 문제 등 마음(心) 깊은 곳(深)에 있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한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는 일본 사회만의 문제라고 여겼지만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국내 은둔 청년의 숫자는 30~40만 명에 이른다. 사진은 일본의 히키코모리를 주제로 다룬 봉준호 감독의 단편 ‘흔들리는 도쿄’의 스틸컷.
한때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는 일본 사회만의 문제라고 여겼지만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남의 일로 치부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국내 은둔 청년의 숫자는 30~40만 명에 이른다. 사진은 일본의 히키코모리를 주제로 다룬 봉준호 감독의 단편 ‘흔들리는 도쿄’의 스틸컷.


일본 만화 ‘내일은 일요일, 그리고 모레도’의 주인공 타미야 보이치로는 부모의 지나친 간섭을 받으며 성장한 20대 청년이다. 대기업 취업에 성공했지만 첫 출근하는 날부터 어머니는 심약한 아들이 걱정돼 울먹거리며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아버지는 아들을 지하철로 데려다준다. ‘지옥철’에 시달리며 회사 건물에 겨우 도착했지만 “무슨 일로 왔느냐”고 추궁하는 경비의 고압적 태도에 소심한 보이치로는 대답도 못하고 줄행랑치고 만다. 길거리를 헤매던 그는 오전 11시를 알리는 라디오 소리에 벌벌 떨다 아예 출근을 포기해버린다. 첫 출근에 실패하고 사회 생활에 자신감을 잃은 그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은둔 생활을 택한다.
“청년 100명 중 1명은 1년 이상 은둔”

1971년 제작된 일본 만화 ‘내일은 일요일, 그리고 모레도’의 주인공인 타미야 보이치로는 취직은 성공했지만 첫 출근에 실패한 이후로 집에만 은둔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일본 일러스트 콘텐츠 사이트 ‘픽시브’
1971년 제작된 일본 만화 ‘내일은 일요일, 그리고 모레도’의 주인공인 타미야 보이치로는 취직은 성공했지만 첫 출근에 실패한 이후로 집에만 은둔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가 된다. 일본 일러스트 콘텐츠 사이트 ‘픽시브’

요즘 청년들의 이야기인가 싶지만 이 만화는 1971년에 탄생했다. 반세기 전 일본에서는 80세 노인이 된 부모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50대 자녀를 먹여 살리는 이른바 ‘8050’ 문제를 예견한 것이다. 일본 내각부가 2016년 발표한 ‘청년생활 조사’ 자료에 따르면 15~39세 히키코모리는 약 56만 명, 2019년 발표한 ‘생활상황 조사’ 자료에서 40~64세 히키코모리는 약 61만 명으로 나타났다. 두 조사 결과를 합치면 히키코모리 수가 대략 100만 명이 넘는 것 자체도 놀랍지만 6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한 것을 보면 상황의 심각성이 느껴진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도 더 이상 남 일처럼 손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만 18~34세 청년 204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2021년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5.1%의 청년들이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출산을 이유로 외출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면 집에서 은둔 생활을 하는 비율은 전체의 1.9%다. 100명 중 2명이 은둔 청년이란 의미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1년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서 외출하지 않는다고 답한 청년 비율과그 이유

연구원은 이들 중 절반은 1년 이상 집 밖에 나오지 않는 심각한 은둔 상태로 추정했다. 이런 통계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국내 은둔 청년의 수는 30~40만 명 정도다. 또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일할 의지 없이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는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은 2020년 기준 8.4%에 달한다. 일본은 니트족과 히키코모리의 숫자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국내에서도 은둔 청년의 숫자가 늘어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성장기 불우한 경험이 은둔 생활로 이어져

은둔 생활을 하지 않더라도 조사에 응한 청년 13.4%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이 연락 두절 됐을 때 생사 여부를 확인해줄 사람이 없다고 답한 청년은 전체의 5.7%였다. 가족과 비대면 교류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4%나됐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21년 청년 사회·경제 실태조사’에서 삶에서 고립과 관련한 감정을 느낀다고 응답한 청년의 비율(단위:%)

고립감을 느낀다고 답한 13.4%의 청년들은 성장기에 불우한 환경에 노출됐거나 부모와의 갈등, 학업이나 취업 실패 등으로 좌절을 겪은 경우가 많았다. 이들 중 상당수는 △성장기 양육자의 과도한 체벌이나 정서적 학대 △어려운 가정 형편 △이사나 전학 △입시·취업 실패 △진로 갈등 △따돌림 등 부정적 경험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립된 상황에 처하게 된 데는 환경의 영향이 컸다는 의미다.

그러나 은둔 당사자조차도 은둔을 개인의 부적응 탓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책하며 주변에 도움을 청하지 못한다. 대부분 혼자서 끙끙 앓다가 우울증 등 마음의 병을 더 키우기도 한다. 가족들 역시 정신병리적 차원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자녀를 이해하지도, 통제하지도 못하는 부모는 자식을 포기해 버리거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키는 강수를 두기도 한다. 드물게는 무속인에게 굿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은둔도 스펙” 회사 차린 은둔 고수들
지난달 23일 서울 강북구 ‘안무서운회사’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유승규 대표(오른쪽부터), 쉐어하우스 입주자 이승우 씨, 정인희 매니저가 인근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지난달 23일 서울 강북구 ‘안무서운회사’ 쉐어하우스에서 만난 유승규 대표(오른쪽부터), 쉐어하우스 입주자 이승우 씨, 정인희 매니저가 인근을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은둔 청년의 자립을 돕는 ‘안무서운회사’의 유승규 대표(30)는 “은둔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현상에서 기인한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동아일보와의인터뷰에서 “대부분 은둔 청년들은 가정 환경이 좋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IMF 등 경제적인 가족 붕괴나 학교 폭력을 이유로 은둔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 대표 역시 부모와 진로 갈등 문제로 20대에 5년 간 은둔 생활을 한 ‘은둔 스펙’ 보유자다. 2021년까지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의 은둔형 외톨이 지원단체 ‘K2인터내셔널코리아(이하 K2)’의 자립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됐다. K2가 팬데믹으로 인한 재정난으로 철수하자 K2에서 만난 은둔 청년 4명이서 안무서운회사를 차렸다. 세상이 무서운 은둔 청년들에게 쉽게 다가가기 위한 이름이라고 한다.

“스스로 은둔이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 버리는 은둔 청년들은 자신의 경험을 드러내면 큰일 나는 줄 알고 더 숨어버려요. 주변에서는 부모 등골이나 빼먹는 히키코모리를 왜 도와주느냐고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은둔을 ‘커밍아웃’ 해보니 그동안 힘들다고 말하는 것이 곧 수치스러운 것이라는 거대한 사회적 가스라이팅 속에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들면 언제든 도움을 요청해도 돼요. 굳이 정상적으로 보이려고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살면 치유와도 멀어질 뿐이니까요.”(유승규 대표)

은둔 청년들은 쉐어하우스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며 기본적인 생활 습관부터 타인과의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터득해 간다. ‘안무서운회사’ 제공


안무서운회사는 서울시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건물 2채를 지원받아 서울 강북구에서 은둔 청년들이 공동 생활하며 자립하는 쉐어하우스를 운영한다. 여성과 남성 숙소의 정원은 각각 3명, 5명이다. 입주자들은 월 150만 원 안팎의 입주비를 내고 매니저들과 함께 생활하며 먹고, 자고, 씻는 생활 습관부터 다시 배운다. 자격증을 따거나 일자리를 구하는 등 적극적으로 진로를 모색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창립 멤버이자11년간 은둔 생활을 했던 정인희 매니저(29)는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땐 협력사에 전화하는 것조차 무서워 말을 더듬다가 보이스피싱이라고 오해를 받았다”며 “아예 실어증이 있는 경우도 있어서 아르바이트 등 일 경험을 시켜주려 해도 이 부분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긴 하다”고 말했다.
촘촘한 사회안전망 절실
이들 외에도 은둔 청년의 자립을 돕는 움직임이 속속 일어나고 있다. 광주에서는 지난해 7월 ‘광주광역시 은둔형외톨이 지원센터’를 만들었다. 전국 지자체 중 유일하다. 2014년부터 꾸준하게 은둔 청년 자립지원 활동을 해오다 2022년 정식으로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 ‘푸른고래 리커버리센터’도 은둔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다. 은둔 청년들을 위한 소통 플랫폼인 ‘두더지땅굴’도 은둔 청년들의 온라인 소통을 돕기 위해 지난해 생겨났다. 두더지땅굴은 청년 사회적 사업가를 양성하는 사단법인 ‘씨즈(seed:s)’가 만들었고, 안무서운회사가 자문을 맡았다.

은둔 청년들의 온라인 소통을 위해 만들어진 ‘두더지땅꿀’ . 홈페이지 캡처

다만 체계적 지원 시스템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히키코모리 문제가 심각한 일본은 지원 체계가 촘촘히 짜여 있어 벤치마킹할만 하다. 2019년 일본 후생노동성 발표에 따르면 일본은 64개 지자체에서 히키코모리 지역 지원 센터를 운영한다. 은둔 청년을 위한 전문 상담 창구를 운영하고, 코디네이터가 가정을 방문해 당사자와 가족을 관리하며 복지센터나 의료기관, 민간단체 등에 인계하는 작업도 한다. 히키코모리를 지원하는 전담 인재를 양성하는 연수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K2와 같은 히키코모리 민간 지원 단체는 1000여 개가 넘는다.
“은둔 청년 특수성 이해하는 전문 인력 키워야”
‘전직’ 은둔 청년들은 시스템 구축과 함께 가장 필요한 것으로 이들과 직접 맞닿을 전문인력 양성을 꼽았다. 정 매니저는 “은둔 생활하던 시절에 가족들이 세 번이나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켰다”며 “다행히도 마지막 입원했던 병원에서 옆집 아저씨 같았던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회복하게 됐다”고 말했다.이어 “그 전에 만났던 의료진은 사무적이고 고압적이라 마음을 열 수 없었다”며 “결국은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무서운회사의 쉐어하우스 입주자인 이승우 씨(가명·22)는 “셰어하우스에 살면서 가장 좋은 것은 마음을 터놓을 사람이 생긴 것”이라며 “갑자기 안 좋은 충동이 들 때가 있었는데 바로 형(유 대표)한테 전화를 걸어서 진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혼자였다면 해결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압도됐을 텐데 지지망이 생겼기 때문에 후퇴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은둔의 특수성을 이해하는 전문 인력이 사실상 전무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훈련된 사회복지사, 상담사들도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다”며 “노인복지처럼 청년복지에도 지원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나 지자체의 물적·인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주문이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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