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환 광부 “희망 안놓으니 빛이 보이더라… 절대 포기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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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꺾이지 않은 마음]〈3〉‘기적의 생환’ 광부 박정하씨
갱도 고립 221시간 만에 무사 귀환
“생환 뒤 가족-일상의 소중함 느껴… 건강 되찾고 광부 처우개선 나설것”

올해 10월 경북 봉화 광산 지하에 고립됐다가 221시간 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박정하 씨가 26일 오전 강원 정선군 폐광근로자협의회 사무실 창으로 스며들어온 햇볕을 맞고 있다. 박 씨는 “막장 앞에 선 것처럼 막막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한 줄기 빛이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선=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올해 10월 경북 봉화 광산 지하에 고립됐다가 221시간 만에 극적으로 생환한 박정하 씨가 26일 오전 강원 정선군 폐광근로자협의회 사무실 창으로 스며들어온 햇볕을 맞고 있다. 박 씨는 “막장 앞에 선 것처럼 막막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한 줄기 빛이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선=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강원 정선군 고한읍 산골 주택에서 지내는 박정하 씨(62)는 요즘도 오전 3시가 되면 어김없이 눈이 떠진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깨면 경북 봉화 광산 지하 190m의 차디찬 갱도에서 기약 없이 버텼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박 씨는 “잠을 청해도 잘 수 없어 해가 떠오를 때까지 하염없이 TV 채널을 돌리는 것이 일상”이라고 했다.

주치의는 그런 그에게 “당시 기억을 되살려서 좋을 게 없다. 강연과 TV 출연 등 외부 활동을 줄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했다. 하지만 박 씨는 충고를 무시하고 매일 아침 집을 나선다.

26일도 정선군 사북읍 폐광근로자협의회 사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난 박 씨는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게 막장에서 살아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국민에게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으니 빛이 보이더라. 마지막까지 희망을 잃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했다.
○ “마지막 순간 가족이 떠올랐다”
박 씨는 아내(63)와 만나면서 탄광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1982년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가 아내와의 결혼을 허락받기 위해 사북으로 향했다. 장인이 당시 국내 최대 민영탄광 광부였는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권유해 결혼과 동시에 광부 생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탄광이 문을 닫은 후 2005년부터는 폐광근로자협의회에서 활동하며 동료 광부들의 처우 개선을 위해 일했다. 박 씨는 “동료들을 위한다는 보람은 컸지만 월급은 없었다. 협회 일을 하는 2019년까지 식당을 하는 아내가 주로 돈을 벌었다”며 “한마디로 빵점짜리 가장이었다”고 돌이켰다.

2019년 설 명절을 지낸 뒤 ‘다시 가족을 챙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곳도 탄광이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환갑을 앞두고 봉화의 아연광산에 들어갔다.

그렇게 다시 시작한 광부 생활은 올 10월 26일 최대 위기를 맞았다. 보조 작업자(56)와 함께 수직갱도 지하 190m 지점에 있었는데, 폐갱도에 있던 모래와 흙이 아래로 쏟아지면서 작업 지점에 고립된 것이다.

그때 베테랑 광부인 박 씨의 기지가 빛을 발했다. 챙겨 온 믹스커피로 에너지를 보충했고, 산소용접기로 젖은 나무를 말린 뒤 불을 지펴 몸을 녹였다. 폐비닐로 천막을 만들어 천장에서 떨어지는 지하수를 막으며 일주일 넘게 버텼다. 박 씨는 “열흘째가 되던 날 헤드랜턴 전원이 나가고 컴컴해지는 순간 두려움과 공포가 밀려와 미칠 것 같았다”며 “그때 가족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고, 이어 발파 소리가 들렸다”고 돌이켰다.

두 광부가 고립된 지 221시간 만에 건강하게 걸어서 나온 것을 언론은 ‘봉화의 기적’이라고 불렀다. “막장에서 한순간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는 박 씨의 말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로 국가적 트라우마를 겪던 국민에게 용기를 줬다.
○ 막장 인생에도 희망이 폈다
그의 생환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각계의 격려도 답지했다. 생환 일주일 만에 퇴원하면서 박 씨는 “막 태어난 갓난아이처럼 감회가 새롭다. 즐겁게 제2의 인생을 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퇴원 후 생활은 생각만큼 만만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도 매일 밤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박 씨는 “아직도 자동차로 30분 거리의 병원을 오가며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며 “고약한 병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막장에서 포기하지 않았는데, 트라우마 앞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각오를 다진다고 했다. 박 씨의 언행도 달라졌다. 그는 “원래 내성적이고 무뚝뚝한 스타일인데 생환 후에는 감정에 꽃이 피었다고 할까, 모든 게 가치 있고 소중하단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특히 가족의 소중함을 느껴서 아내와 두 아들에게 먼저 사랑한다는 말을 건넬 만큼 애정 표현도 과감해졌다”며 웃었다.

언론에 자주 등장한 덕분에 길거리를 지나가면 알아보고 위로와 격려를 해주는 이들도 생겼다. 박 씨는 “새해에는 일단 건강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겠다. 그리고 여러 단체와 협력하며 광부의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또 새해를 맞는 국민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꼭 해주고 싶다고 했다. “지금 막장 앞에 선 것처럼 막막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 그분들에게도 한 줄기 빛이 반드시 찾아올 거라고 믿습니다. 제가 그 증거입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희망을 잃지 마세요.”

정선=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기적의 생환#광부 박정하씨#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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