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의 삶에는 근현대사의 질곡이 얽혀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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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산업문화 유산인 임동 공장… 개발사업 진행되면서 새롭게 조명
광주여성가족재단이 발간한 책… 노동자 6인의 생생한 목소리 담겨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의 기획 전시
공장의 변천사 치밀하게 그려내

1970년대 초 광주 북구 임동 방직공장 정문 모습. 전남방직은 2017년 평동산단으로 공장을 옮겼고 일신방직도 2020년 초부터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금은 오래된 굴뚝과 잿빛 건물만이 남아 있다. 광주시 제공
1970년대 초 광주 북구 임동 방직공장 정문 모습. 전남방직은 2017년 평동산단으로 공장을 옮겼고 일신방직도 2020년 초부터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금은 오래된 굴뚝과 잿빛 건물만이 남아 있다. 광주시 제공
광주 북구 임동에 있는 방직 공장은 일제강점기와 산업화 과정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애환이 서린 근대산업문화 유산이다. 광복 이후 정부가 관리하다가 1951년 전남방직주식회사로 민영화했고 1961년 일신방직이 분할했다.

1970년대 종업원 수가 6000명에 이를 정도로 방직 산업의 호황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산업 환경이 변화되면서 전남방직은 2017년 광주 평동산업단지로 공장을 이전했다. 일신방직도 2020년 초부터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지금은 오래된 굴뚝과 잿빛 건물만이 남아 있다. 그동안 공장 가동 등으로 개발을 하지 못해 광주 도심에서 가장 낙후한 지역으로 꼽히던 이곳에 역사문화공원과 복합쇼핑몰, 호텔, 아파트 등을 짓는 민간사업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삶이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3교대와 철야 작업 등 힘든 노동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 발간됐다. 방직공장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되돌아보는 기획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여성 노동자 애환 서린 방직공장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출간한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광주시 제공
광주여성가족재단이 출간한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 광주시 제공
광주여성가족재단은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 6명의 구술 채록을 담은 ‘뼈를 녹여 소금꽃을 피웠다’를 최근 발간했다. 217쪽 분량의 책에 서술된 노동자들은 40대부터 80대 후반의 여성들이다. 1953년 6·25전쟁 직후에 입사한 이도 있고 2년 전 일신방직이 가동을 중단할 때까지 일한 이들도 있다.

책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된 노동을 감내했던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오롯이 담겨 있다. 이들에게 방직공장은 가족의 생계비와 동생들의 학비를 충당하는 일터이자 현재까지 온몸에 솜뭉치가 달라붙는 꿈을 꿀 정도로 치열한 공간이었다.

책 제목은 구술자로 참여한 정미숙 작가의 시 ‘소금꽃’의 일부 구절에서 따왔다. 정 작가는 방직공장의 극한 노동을 ‘8시간 어서어서 지나가길 기다리며 앞만 보고 고개만 숙이고 다람쥐 쳇바퀴 돌고 돌아 굵은 땀방울 흐르고 흘러 겨드랑이마저 짓물리고 나서야 소금꽃으로 피어났네’라는 시로 표현했었다.

정미경 광주여성가족재단 성평등문화팀장은 “2019년부터 광주여성사의 통사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그 첫 결과물이 이번에 나왔다”며 “방직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얘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근현대사의 가난과 희생, 노력을 마주하게 된다”고 말했다. 재단을 방문하면 책을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방직공장의 기억과 기록
광주역사민속박물관은 임동 방직공장의 역사와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유림 숲 속 방직공장: 버들꽃씨의 기록’ 기획전시회를 열고 있다. 10월 30일까지 개최되는 전시회는 방직공장이 들어서기 이전 자리했던 유림 숲의 시간부터 더 이상 공장의 기계가 돌아가지 않는 현재 시점까지를 다루고 있다. 이 공간에서 있었던 일을 기억하는 가상의 인물 ‘버들꽃씨’가 전시회를 이끌어 간다.

1부 ‘유림 숲의 작은 꽃씨’는 조선시대 광주 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유림 숲을 ‘미암선생집’, ‘운와유고’ 등 자료와 함께 실감 영상으로 재구성했다. 2부 ‘종방의 소녀를 만나다’에서는 유림 숲이 없어진 자리에 문을 연 종연방적 전남공장과 강제 동원돼 일했던 어린 여공들의 이야기를 음성자료로 구현했다. 3부 ‘임동 방직공장의 나날’은 광복과 6·25전쟁 이후 방직공장의 복구와 활황을 다룬다. 1960년대 이후 광주로 유입된 여성 인구 중 다수가 임동에 자리 잡은 사실과 이들의 주체적 삶이 빚어낸 도시 광주의 의미를 되돌아본다. 4부 ‘기계소리 멈춘 방직공장에서’는 방직공장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과 이 공간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일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디지털 액자를 통해 1950년대 공장 생활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일제강점기부터 자리했던 공장의 발전소 내부를 가상현실(VR)로 체험할 수 있다.

역사를 의미하는 씨실과 날실을 엮어 컵 받침대를 만드는 체험 프로그램과 함께 시민 의견을 듣는 작은 코너도 운영하고 있다.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 날 휴관한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광주 방직공장#여성 노동자#근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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