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팩, 잘 씻어서 따로 내야 고급 원료 다시 쓰죠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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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액션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2〉‘종이팩 재활용률’ 어떻게 높일까
2016년 25.7%던 종이팩 재활용률, 멸균팩 늘자 5년 만에 15.8%로 뚝
알루미늄 성분 제거하는 과정 필요… 국내에는 처리업체 한 곳밖에 없어
멸균팩 전용 처리 시스템 구축하고, 소비자들도 씻어 버리는 습관 필요

지난달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민 태경민 씨(오른쪽)가 일반팩과 멸균팩을 별도 수거함에 따로 버리고 있다. 화성=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달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에서 주민 태경민 씨(오른쪽)가 일반팩과 멸균팩을 별도 수거함에 따로 버리고 있다. 화성=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달 경기 화성시의 한 아파트 분리수거장. 입주민 태경민 씨(42·여)가 깨끗하게 씻어 말린 종이팩 뭉치를 한 아름 들고 왔다. 태 씨는 우유팩을 일반팩(살균팩) 수거함에 버린 뒤, 두유팩과 주스팩은 멸균팩 수거함에 따로 넣었다. 100L 비닐봉지로 된 수거함은 비운 지 일주일도 안 돼 절반 넘게 찼다. 태 씨는 “분리수거함이 생기면서 일반팩과 멸균팩을 나눠서 모으고 제대로 씻고 펼쳐서 버리는 주민이 늘었다”고 말했다.

○ 재활용률 낮아지는 종이팩

이 아파트에는 1월부터 각 동마다 종이팩 분리수거함이 설치됐다. 종이팩 중 재질이 다른 일반팩과 멸균팩을 따로 수거해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서다. 배출 요일이 정해진 다른 재활용 쓰레기와 달리 종이팩은 언제든 배출할 수 있다. 이곳에서 1월에 수거한 종이팩은 150kg. 같은 기간 환경부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에 참여한 화성시 공동주택 4만9000여 가구가 내놓은 종이팩은 약 3t에 이른다.

게티이미지코리아
게티이미지코리아


종이팩은 고급 펄프를 원료로 만들기 때문에 재활용 가치가 높다. 주로 화장지를 만드는 데 쓰인다. 그런데 최근 재활용시장에서는 종이팩이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후 비대면 소비 증가에 따라 알루미늄으로 내부를 코팅한 멸균팩 사용이 늘면서다. 멸균팩은 빛과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펄프와 다른 성분을 여러 겹으로 맞붙이는데, 일반팩과 함께 섞어 배출하면 재활용하기가 까다롭다. 물에서 분해되는 속도가 다르고, 멸균팩의 알루미늄 성분을 완전히 제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4년 전체 종이팩 배출량 중 25% 수준이던 멸균팩 비중은 2020년 41%로 늘었다. 2030년엔 이 비율이 63%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팩과 함께 배출되는 멸균팩이 늘면서 국내 종이팩 재활용 비율이 떨어지고 있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6년 25.7%였던 종이팩 재활용률은 2020년 15.8%까지 감소했다. 경기도의 한 폐지 수거업체 대표는 “멸균팩을 따로 분류하려면 인력이 더 필요하다”며 “인건비가 반영돼 판매 단가가 높아지면 제지업체에서도 계약을 꺼리고, 이 때문에 그냥 폐기하는 종이팩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환경부가 지난해 12월 일반팩과 멸균팩을 분리배출하는 시범사업을 시작한 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다.

○ 시급한 멸균팩 재활용 인프라 구축

해외에선 일찌감치 멸균팩 재활용 인프라를 갖춰 자원 낭비를 막고 있다. 지난해 한국산학기술학회에 등재된 ‘해외 사례 분석을 통한 국내 멸균팩 재활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멸균팩을 포함한 스웨덴의 종이팩 재활용률은 80%에 이른다. 미국(60%)과 캐나다(53%)도 종이팩 절반 이상을 재활용한다. 대만도 종이팩에서 펄프와 폴리에틸렌(PE), 알루미늄을 따로 분리해 쇼핑백, 신발 깔창, 공원 벤치 등 다양한 형태로 재활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멸균팩 재활용 시설이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멸균팩 재생업체는 강원도에 위치한 삼영제지가 유일하다. 멸균팩에서 추출한 펄프로 종이타월을 만들고, 알루미늄 등은 다른 기업에 납품한다. 이곳마저도 최근 멸균팩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 공장의 절반만 가동하고 있다. 이동규 삼영제지 대표는 “한 달에 멸균팩이 100t가량 필요한데 국내에서 회수하는 물량은 30t도 안 된다”며 “수입 멸균팩은 더 비싸고 물량 확보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도 멸균팩을 재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을 하루 빨리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지금이라도 멸균팩 분리 배출을 활성화하고 전용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종이팩 수거·선별 업체가 멸균팩을 더 적극적으로 선별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마재정 환경부 자원재활용과장은 “올해부터 멸균팩 선별을 많이 하는 업체에는 재활용지원금을 약 두 배까지 차등 지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활용률을 높이려면 소비자들이 종이팩을 씻어버리는 것도 중요하다. 플라스틱 등 다른 재활용 쓰레기보다 부패하기 쉽기 때문이다. 박인수 한국포장재활용사업공제조합 팀장은 “종이팩의 90%가량은 씻지 않고 그대로 버려진다”며 “수거와 선별 과정에서 장시간 방치되면 재활용할 수 없을 정도로 종이가 상해 폐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화성=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종이팩 분리배출#재활용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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