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역완화’ 시사에 경각심 풀어져
발열 인후통에도 상당수 검사 미뤄… “증상 발현후 이틀 지나 검사받으면
전염력 높아 ‘전염원’ 역할 한 셈”… 격리지침 어기고 슈퍼-약국 방문
타인 ‘방역패스’로 다중시설 이용… 부스터샷 접종속도 둔화 뚜렷
5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50대 A 씨는 방역당국으로부터 7일간 재택치료 안내를 받았지만 격리 나흘째인 8일 새벽 등산에 나섰다. 그는 “집에서 자가검사키트로 검사했는데 음성이 나와 외출해도 될 것 같았다”며 “정부가 확진자 관리에 손을 놓았으니 등산을 해도 모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정부가 정한 코로나19 대응 지침에 따르지 않는 ‘방역 불복’이 늘고 있다. 엄격한 방역지침에도 확진자가 폭증해 매일 5만 명 이상 나오는 데다 정부가 ‘거리 두기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까지 내놓자 ‘곧 풀어질 게 뻔한 규제를 꼭 지켜야 하나’라는 생각이 급격히 퍼지는 모습이다. 유행 중인 오미크론 변이의 위중증 환자 비율이 기존보다 낮은 것도 방역 의식을 해이하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 검사 미루고 자가격리 안 해
정부는 설 연휴 이후 재택치료자 모니터링을 줄이고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자가격리를 확인하는 시스템도 폐지했다. 그러자 재택치료 기간 중 외출하는 확진자가 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확진 후 재택치료 중이던 B 씨(33)는 격리 해제를 이틀 남기고 보건소에서 실수로 발송한 ‘격리 해제’ 문자를 받은 후 동네 슈퍼와 약국을 방문했다. 그는 “잘못 온 문자라고 생각했지만 격리가 갑갑하던 참에 별다른 증상도 없어 외출했다”고 했다.
의심 증상이 있어도 제때 검사를 받지 않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소기업 임원 박모 씨(59)는 최근 열이 나고 목이 아팠지만 검사를 증상 발생 이틀 후 받았다. 박 씨는 “회사에서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격리되면 참여할 수 없어 뒤늦게 검사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검사 결과 양성 판정을 받았다. 김우주 고려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는 증상 발현 2일 전부터 발현 후 2, 3일까지 바이러스가 가장 많이 나오고 전염력도 높다”면서 “박 씨는 전염원 역할을 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고양시에서 도배 일을 하는 C 씨(27)는 최근 회사 사장이 발열, 기침, 인후통 등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여 불안에 떨었다. 직원 권유에도 사장은 끝까지 검사를 안 받았다. 그는 “확진되면 일을 못하니 일부러 검사를 안 한 것 같다”며 “임신한 부인이 있는 직원도 있는데 너무하다 싶었다”고 했다.
○ 부스터샷 속도 둔화 뚜렷
백신 추가 접종(부스터샷)을 하고도 확진 판정을 받는 ‘돌파 감염’이 속출하면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제)에 대한 불신도 커지고 있다.
경기도에 사는 변모 씨(40·여)는 백신 2차 접종 후 180일이 지났지만 부스터샷을 맞는 대신 식당 등 다중이용시설을 방문할 때 어머니의 접종확인서를 대신 내보이고 있다. 변 씨는 “어머니가 2차 접종 후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심각한 이상반응이 왔다”며 “추가 접종을 한 언니와 형부가 최근 확진되는 걸 보니 부스터샷을 맞는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더라. 가급적 맞지 않고 버텨볼 생각”이라고 했다.
실제로 최근 부스터샷 접종 속도는 눈에 띄게 둔화되고 있다. 인구 대비 3차 접종률은 지난해 12월 28일 30%대를 넘은 후 지난달 26일 50%대에 진입했다. 한 달 만에 20%포인트나 늘어난 건데 이후 19일이 더 지난 14일까지는 7%포인트밖에 더 올라가지 않았다. 특히 20∼40대의 접종 속도가 더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섣불리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을 늦출 때가 아니라고 경고한다. 최재욱 고려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확진자 폭증으로 방역당국이 역학조사를 거의 못하는 상황인 만큼 자발적 방역지침 준수가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도 “해외 연구 결과 등을 감안하면 실제 국내 확진자 수는 현재 발표된 것의 2∼5배일 수 있다”며 “증상이 가볍다고 방역수칙을 지키지 않는 행동은 고령자 등 고위험군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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