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올해 신임 판사 임용 ‘블라인드’ 방식 도입…“판사 임용시 최소 경력 5년 이상은 승진제도 부활 아냐” 주장도[법조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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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을 판사로 임용하는 ‘법조일원화’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올해부터 ‘블라인드’ 심사를 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판사 부족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판사 임용 시 필요한 최소 법조 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법률 개정안은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2021년 판사 임용 지원자가 작성하는 ‘자기소개서2’ 파일 캡처. 면접의 기초자료로 쓰이는 자기소개서에 출신지역, 가족관계, 학력, 근무한 로펌 등을 적지 말라고 돼 있다.
2021년 판사 임용 지원자가 작성하는 ‘자기소개서2’ 파일 캡처. 면접의 기초자료로 쓰이는 자기소개서에 출신지역, 가족관계, 학력, 근무한 로펌 등을 적지 말라고 돼 있다.


● 김앤장 출신 다수? “출신 로스쿨, 로펌 ‘블라인드’ 면접”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올해 신임 판사 임용 때부터 출신 대학과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법무법인(로펌)을 표기하지 않고 블라인드 형식으로 심사하는 방식을 도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선 “김·장 법률사무소(김앤장) 출신 변호사 중 올해 신임 판사로 임용이 예정된 인원이 20명이나 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올해 심사의 주요 단계에서 출신 로펌을 숨긴 채 평가가 이뤄진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을 도입한 배경은 법조일원화의 취지를 살려 다양한 경험을 가진 법조인을 판사로 임명하기 위해서다. 법조일원화는 사회적 경험과 연륜을 갖춘 변호사, 검사를 판사로 임용해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게 하겠다는 취지로 2013년부터 시행된 제도다.

판사 임용 절차는 필기 시험, 지원서 접수, 1차 면접(민·형사 실무 능력 평가), 2차 면접(법조 경력, 인성 평가), 3차 면접(최종면접), 대법관 회의, 임명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중 2차 면접 때까지는 면접위원들이 참고하는 판사 지원자의 서류에 출신 대학, 로스쿨, 로펌 등을 알 수 없도록 하는 제도를 대법원이 올해부터 시행했다. 최종 면접인 3차 면접에서는 큰 문제가 없는 이상 2차 면접을 통과한 지원자의 대부분이 합격한다. 사실상 주요 심사 단계에서 출신 학교와 로펌을 고려하지 않는 셈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출신 로펌을 표기한 채 면접을 진행한 지난해에는 김앤장 출신 중 12명, 2019년에는 3명이 신임 판사로 뽑혔다. 오히려 올해(20명)보다 적다. 대법원 관계자는 27일 “임용 과정에서 이름, 학력, 근무한 법무법인 등 개인정보는 비실명화하여 블라인드 방식으로 투명하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소년 강력범죄 연구한 입법조사관 등 다양한 법조인이 판사로
올해 신임 판사 임용을 앞둔 법조인들 중에는 다양한 사회 경험을 가진 이들이 선발됐다. 한국소비자원 변호사로 일하며 법원에서 조정 사건을 전담한 변호사도 올해 판사가 될 예정이다. 국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하며 ‘소년 강력범죄에 대한 대응과 재범 예방 필요성’ ‘소년 범죄의 발생 현황과 시사점’ 등을 연구한 변호사도 있었다. 교사 자격증을 따고 교육 관련 업체에서 일하다 국선변호사로 이직한 뒤 44세였던 지난해 판사에 임명된 ‘늦깍이 판사’ 사례도 있다. 무료 법률상담 및 피해자 변호를 맡던 변호사, 해킹·보안 전문 변호사, 국세청 출신 변호사, 중소벤처기업부에서 창업 관련 심의를 담당한 변호사 등도 지난해 판사가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사 임용 시 필요한 최소 법조 경력을 5년으로 줄이는 법률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두자 “법조일원화 등 사법 개혁 흐름을 거스르고 법원의 폐쇄성을 강화하는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대법원 측은 “법조일원화 취지에 부합하는 다양한 사회 경력을 가진 판사를 임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개정안 통과돼도 ‘승진제 부활’ 아냐”
판사 임용 시 요구되는 최소 법조경력을 10년에서 5년으로 줄이는 법안에 대해 국회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법원 조직의 관료화를 없애겠다’며 폐지한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도’가 부활한 셈”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개정안은 5년 이상 경력을 가진 법조인 중에서 판사를 임명하면서도 고등법원 판사는 10년 이상 판사 생활을 한 사람 중에 보임하도록 했다. 판사 경력 10년 이상인 사람을 고법 판사로 임명하는 것은 사실상 고법 판사로 승진하는 제도를 만든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대법원에 따르면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에도 이미 고법 판사는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판사들이 맡았다. 개정안이 새로운 승진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고등법원은 주요 사건에 대한 2심 판단을 담당하기 때문에 이미 판사 경험이 많은 자원이 고법 판사를 맡고 있는 것이다. 법관인사규칙 제10조에도 “고등법원 판사는 상당한 법조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지원을 받아 보임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전국 고법 판사 345명 중 337명(97.6%)의 법조 경력은 10년 이상이고, 나머지 8명은 9년 6개월이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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