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철 전 감독 별세…“너무 빨리갔다” 축구계 애도물결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7일 2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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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유상철 전 인천 감독이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췌장암으로 투병 중이던 유 전 감독은 7일 오후 7시경 서울 아산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50세.

유 전 감독은 프로축구 K리그1(1부 리그) 인천 사령탑을 맡고 있던 2019년 10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유 전 감독은 “받아들이기 힘든 진단을 받았다. 계속해서 치료를 병행해야 하지만 나는 현장에 있을 때가 가장 좋다. 그라운드 안에서 긍정의 힘을 받고자 한다”며 심경을 밝혔다. 유 전 감독은 끝까지 그라운드를 지켰고, 그해 인천은 강등 위기를 넘기고 K리그1 잔류에 성공했다.

시즌이 끝난 뒤 유 전 감독은 계약기간이 1년 남았지만 지휘봉을 내려놨다. 팀보다 자신을 향한 관심이 부담스러웠고, 항암 치료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13차례에 걸친 항암 치료 끝에 병세가 호전된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중순부터는 방송에도 가끔 출연하고 언론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올해 1월 갑작스러운 두통을 호소해 검사를 받은 결과 뇌 쪽으로 암세포가 전이된다는 판정을 들은 뒤 건강이 급격히 나빠졌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유 전 감독은 “잘 이겨내서 다시 운동장에 서겠다“고 다짐했으나 결국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서울 응암초 4학년 때 처음 축구와 인연을 맺은 유 전 감독은 경신중과 경신고를 거치며 멀티 포지션을 소화하기 시작했다. 화려한 플레이보다는 팀플레이가 좋은 선수였다. 유 전 감독은 한국 축구에서 가장 멀티플레이에 능한 선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공격수는 물론 중앙과 측면 미드필더는 물론 중앙 수비수도 소화했다.

건국대 졸업 뒤 1994년 현대 유니폼을 입고 2006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국내에서 현대 한 팀에서만 뛰었다. 142경기 37골. 1996년, 2005년에는 팀을 리그 정상에 올렸다. 1998년엔 득점왕을 차지했다. 뛰어난 활약에 팬들은 ‘유비’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유럽행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지만 주위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일본 J리그로 무대를 옮겼다. 요코하마와 가시와에서 뛰며 113경기 44골로 이름값을 해냈다.

유 전 감독은 1994년 3월 미국과의 경기를 통해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태극마크를 달았다. 가장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2002 한일 월드컵이다. 유 전 감독은 폴란드와의 조별리그 1차전을 시작으로 마지막 경기였던 터키와의 3·4위전까지 한국이 치른 7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폴란드전에서는 황선홍에 이어 팀의 두 번째 골을 터트려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통산 A매치 기록은 124경기 18골.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후배들과 호흡을 맞췄다.

유 전 감독은 활발한 방송 활동을 통해 유소년 축구 활성화에도 기여했다. 방송 프로그램 ‘FC슛돌이’ 어린이 축구단 감독을 맡기도 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을 통해 발탁된 뒤 대표팀까지 오른 꿈나무가 바로 이강인이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축구 선후배들은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홍명보 울산 감독은 “안 좋다는 소식은 듣고 있었는데…. 빨리 간 것 같다”며 “많이 보고 싶을 것”이라며 후배의 명복을 빌었다. 대표팀과 울산에서 동고동락 했던 골키퍼 전설 김병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지난 30년간 동료이자 후배인 유 전 감독의 영면이 안타깝다. 그의 한국 축구를 위한 헌신과 노력에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적었다. 프랑스 월드컵 조별리그 3차전 벨기에 전에서 후반 프리킥으로 유상철의 극적인 1-1 동점골을 도왔던 하석주 아주대 감독은 “방금 소식을 듣고 눈물이 막 나왔다. 완치는 아니더라도 5년은 더 지낼 줄 알았다”며 아쉬워했다. 하 감독은 “작년 3월 상철이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얘기를 나누면서 힘들면 형한테 연락하라고 했다”며 “최근 소식이 들리지도 않아 이상하기는 했는데…”라고 울먹였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다. 발인 9일 오전 8시. 02-3010-2000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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