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급감… 코로나 유탄… 위기의 대구 향토기업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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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백화점-금복주-대구은행 등 유통환경 변화-경쟁 심화로 고전
직원 갑질-성추문 등 설상가상
비윤리적 행위에 지역민들 실망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대구의 대표적 향토기업들이 극심한 경영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대구백화점 본점. 대구백화점 제공
5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대구의 대표적 향토기업들이 극심한 경영 위기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은 대구백화점 본점. 대구백화점 제공
대구를 대표하는 향토기업들이 어느 때보다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 설립 50년 이상이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할 만큼 건실했지만 지금은 존립이 위태로울 지경이다. 지역 경제와 역사를 대변하는 마지막 버팀목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 매년 매출 급감, 설자리 잃어

1944년 대구상회로 출발한 대구백화점은 설자리를 잃는 분위기다. 지난해 영업손실은 175억5000만 원. 2018년 신세계백화점 대구점 개점 때 사상 최대 영업손실(184억 원)을 기록한 뒤 두 번째다.

최근 3년간 매출은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1199억5000만 원에서 2019년 1014억8000만 원, 지난해 911억1000만 원 등 매년 100억 원 이상 줄고 있다.

과거 대구백화점의 명성은 대단했다. ‘쇼핑=대백(대구백화점)’일 정도였다. 중구 동성로의 본점은 일제강점기 이후 대구의 첫 백화점이다. 오랜 시간 대구시민들과 함께해 ‘만남의 장소’로까지 각인돼왔다.

하지만 이제 본점 매각설까지 돌고 있다. 몇몇 시행사가 금액을 제시해 검토 중이라는 구체적인 정황도 들린다. 한 직원은 “직접 고용이 아닌 매장 소속은 일자리를 잃을 것이다. 소문만 난무해 많은 동료들이 발을 구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26일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에서 본점 매각 또는 폐점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대구백화점 관계자는 “매각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1957년 창업한 주류업체 금복주의 위상도 예전과 다르다. 매출은 2016년 1391억5000만 원, 2017년 1305억 원, 2018년 1182억 원 등 매년 감소 폭이 커지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1000억 원대 밑으로 추락해 891억4000만 원에 그쳤다.

대구의 자부심인 대구은행도 경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1967년 창립한 대구은행은 한때 지방은행 가운데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았다. 하지만 수년간 금융시장의 변화가 극심해지면서 지난해 당기순이익이 2019년보다 15.6% 감소한 2383억 원에 머물렀다. 대구은행은 점포를 줄이고 대신 1인 지점장 제도를 도입했다.

● 시대 흐름에 뒤처져 위기 자초

대구 향토기업 위기는 시장 환경 변화와 대기업과의 경쟁 심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등이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충성 고객이던 대구시민들로부터 점점 외면을 받은 것이다. 갑질 논란과 성범죄 등으로 기업 윤리를 저버리고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면서 도드라졌다.

금복주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2016년 결혼한 여직원을 상대로 퇴직을 강요한 성차별 의혹이 불거졌다. 또 협력업체에 상납금을 강요한 비리도 터졌다. 이후 지역에서 불매 운동이 일어났고 현재까지 매출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대구백화점은 부실한 매장 직원 처우가 논란이었다. 3, 4년 전 본점의 한 매장에서 일한 비정규직 A 씨(60·여)는 지금도 나쁜 기억에 몸서리를 친다. A 씨는 “직원 휴게실이 따로 없어 잠깐 쉴 때도 비상계단에 쪼그려 앉아 커피를 마셨다. 직원 식당의 음식도 부실해서 사비로 바깥 음식점을 이용했다”고 말했다.

대구은행은 각종 도덕적 해이가 반복되고 있다. 올해 1월에는 수성구 본점에서 근무하는 30대 행원이 여자화장실 좌변기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한 사실이 발각돼 경찰에 붙잡혔다. 성범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7년 간부 직원들이 비정규직 여직원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은행 이미지를 떨어뜨렸다. 2018년에는 채용 비리가 터졌다. 더구나 당시 연루된 입사자 10여 명이 지금도 일하고 있어 공분을 사고 있다.

최근 해외 부동산 사기를 당한 일도 터졌다. 대구은행은 지난해 캄보디아 현지 법인이 상업은행 승격을 추진하면서 본사로 이용할 캄보디아 정부 소유의 부동산 매입을 추진했다. 하지만 중국계 기업에 이미 팔렸던 것으로 드러났다. 대구은행은 아직 선금 1200만 달러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DGB금융지주는 26일 정기주주총회에서 김태오 회장의 재선임안을 상정할 계획이지만, 구성원들이 극심한 갈등을 보이고 있다. 계열사인 대구은행 노조가 캄보디아 사태를 책임지라며 김 회장의 연임을 공식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노조 관계자는 “주총 전날인 25일부터 31일까지 규탄 대회를 가질 계획이다. 김 회장의 연임을 무조건 막고 떨어진 회사 이미지를 되살릴 것”이라고 말했다.

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대구#향토기업#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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