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에 서너 명씩, IQ 71~84 ‘느린 학습자’를 아시나요? [박성민의 더블케어]

박성민 기자 입력 2020-11-18 14:30수정 2021-06-1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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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욱 씨(가명·21)는 올 5월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경기 의정부시의 3평 남짓한 원룸이 그의 첫 보금자리다. 또래에게 독립은 그다지 특별한 일이 아니지만 성욱 씨에겐 남다르다. 그는 ‘경계선 지능’ 청년이다. 지능지수(IQ) 85 이상은 정상, 70 이하는 지적장애로 분류된다. 경계선 지능은 IQ가 71~84 사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그야말로 경계인이다. 홀로 일상생활은 어렵지만 장애인이 받는 돌봄이나 복지 혜택을 기대할 수 없는 사각지대이기도 하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지난달 말 찾아간 김 씨의 방은 말끔했다. 책상 위엔 좋아하는 로봇 피규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매일 청소도 잊지 않는다. 혼자 사는 게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재밌다”며 웃어 보였다.

“스무 살 때까지는 원하는 대로 되는 게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젠 집도 있고 식비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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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석 달 전부터 사회적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와플 가게에서 주 4일씩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월 60만 원 남짓을 벌어 생활비로 쓰고 저축도 한다.

자립의 첫 발을 떼기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다른 경계선 지능 아동들이 그렇듯 학교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보겠다는 성욱 씨를 아버지는 외면했다. 어머니는 배움이 느린 김 씨에게 지쳐 폭언을 하거나, 때로는 손찌검도 했다. 집을 나온 그는 가족과 연락을 끊고 청소년 쉼터 세 곳을 2년 간 전전했다.

김성욱 씨(가명)는 주 4일 동안 하루 4시간씩 와플 가게에서 인턴으로 일한다. 그는 “햄버거 가게나 공장에서 일한 적도 있지만, 늘 일자리 구하는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 제공


김 씨의 자립을 지원하고 있는 박현동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장은 가출이 아니라 ‘탈출’이라고 했다. “자녀가 경계선 지능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들이 많아요. ‘왜 이것도 못하느냐’며 체벌을 하거나 심하면 학대로 이어지죠.” 부모의 포기나 가정불화로 보호시설에 머물다가 퇴소하는 20대 초반 경계선 지능 청년은 매년 300~400명에 이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산한다.

김 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다. 아름다운재단과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 이 올해 시작한 ‘청소년 주거복지 지원사업’ 대상(5명)으로 선정돼 보증금과 월세를 지원받고 있다. 생계비와 심리 상담도 받는다. 학교나 가정에서 아무도 알려 준 적 없는 금융 교육도 받고 있다. 주거 지원이 끝나 ‘진짜 자립’을 해야 할 때를 대비해 보증금도 모으는 중이다.

김성욱 씨(가명·오른쪽)는 일주일에 3, 4회씩 경기북부청소년자립지원관 이민혁 간사를 만나 경제 교육과 자립에 필요한 상담을 받는다. 의정부=박성민 기자 min@donga.com


● 인구 12~15%는 ‘느린 학습자’
경계선 지능은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흔하게 볼 수 있다. 미국(2010년)은 전체 학생 집단의 약 14%, 영국(2011년)은 12.3%가 경계선 지능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스라엘에선 2013년 징집 대상 16~17세 청소년 약 50만 명을 조사한 결과 15.3%가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았다. 이를 고려하면 한국도 학령기 아동 중 약 80만 명이 경계선 지능으로 추산된다. 30명인 한 학급에서 서너 명은 여기에 속한다는 의미다.

이들의 첫 번째 고비는 학교에서 찾아온다. 경계선 지능은 ‘느린 학습자’로 불린다. 일반 학생들보다 배움이 느려 더 많은 반복 학습이 필요하다. 어렵게 하나를 배워도 응용이 어렵다. 경쟁이 치열한 일반 학교에선 적응을 못하거나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고, 장애 아동 위주인 특수학교는 자리가 부족하거나 이들에게 맞는 교육 과정이 마땅치 않다.

서울의 한 그룹홈에서 교사가 경계선 지능 아동을 가르치고 있다. 서울 등 대도시를 벗어나면 경계선 지능 아동을 위한 마땅한 교육시설을 찾기 힘들다. 동아일보 DB


가정과 학교에서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한 아이들은 상태가 더 악화되기도 한다. 경계선 지능 청년 지원 프로젝트 ‘더딤(The DIM·The Do It Myself)’에서 활동 중인 서미연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과장은 “맞춤형 지원이 있으면 정상 지능 범주로 발전하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부모에게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아이들은 인지 기능이 장애 수준으로 퇴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최근엔 스마트폰을 통해 비대면 관계에 빠져드는 청소년도 늘어나고 있다. 이는 은둔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은둔형 외톨이’ 중에도 경계선 지능 청년이 비중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본다.

배승민 가천대 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온라인에서 게임 아이템을 사고팔거나 캐릭터를 갖고 놀면서 가족이나 친구에게 못 받는 관심을 대리 충족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과정에서 사기 피해를 입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스무살이 최대 고비…선제적 지원이 사회적 비용 낮춰
성인이 되면 학교라는 보호막마저 사라진다. 진학과 취업 등 선택지가 다양한 또래들과 달리, 경계선 지능 청년들의 스무 살은 막막하다. 취업 시장에서 이들은 가장 후순위다. 비장애인에게는 업무 능력에서 밀리고, 고용 할당제가 있는 장애인처럼 최소한의 일자리를 보장받지도 못한다.

김남열 씨의 아들(25)은 IQ 83으로 정상 기준에 살짝 못 미친다. 하지만 일자리를 구하기는 녹록치 않았다. 어렵게 구한 아르바이트도 2, 3일을 버티지 못했다. 단순 반복 작업은 그럭저럭 해내지만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어려워서다. 김 씨는 “실패 경험이 계속 쌓이다 보니 더 자신감을 잃게 됐다. 경계선 지능 아이들이 일반인과 같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래픽=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부모의 돌봄을 기대할 수 있는 아이들에 비해 아동보호시설에서 퇴소하는 청소년의 일자리 문제는 더 시급하다. 지난해 한국장애인개발원이 발표한 ‘아동양육시설 퇴소 후 경계선 지능 아동 지원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퇴소 예정 아동의 7%가 경계선 지능 판정을 받았고, 15%는 경계선 지능으로 의심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종사자들의 49.1%가 취업이라고 답했고, 원활한 대인관계(20.4%), 주거(12.2%)가 뒤를 이었다.

전문가들은 자립 의지가 있는 경계선 지능 청년들에게 사회가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해정 한국장애인개발원 부연구위원은 “일본은 경계선 지능 학생을 장애 아동이나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와 같이 특별보호 대상에 포함시켜 직업 교육 등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4년 설립된 독일 카리스타 돈보스코 직업교육훈련소는 자폐증, 난민 자녀 등 직업을 갖는데 어려움이 있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홈페이지 캡쳐


복지가 발달한 유럽 선진국들은 경계선 지능을 복지 대상으로만 여기지 않는다. 눈높이 직업 교육을 통해 이들을 사회의 일원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정책의 우선 목표다. 경계선 지능 청소년을 선제적으로 관리하는 게 이들이 반사회적 성향을 띄거나 노숙인이나 공적 부조 대상이 되는 것을 막는 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독일의 카리타스 돈보스코 직업교육훈련소는 경계선 지능을 포함한 경증 장애를 가진 16~25세 청소년을 위한 교육 기관이다. 교사 55명이 600여 명의 학생을 돌보는데, 경계선 지능 청소년이 약 20%를 차지한다. 청소, 자동차정비, 요리 등 18가지의 직업군을 실습 위주로 교육한다. 비장애인이 2, 3년 걸리는 교육을 3, 4년에 걸쳐 가르친다.

● “심리적 차상위계층… 인간다운 생활할 권리 보장해야”
국내에는 경계선 지능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고 관심도 낮다. 전문가들은 이들이 실제 규모에 비해 존재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장애 아동만큼 도움이 시급해 보이지도 않고, 비행 청소년처럼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키지도 않으니 정부나 사회가 적극 나서지 않는다는 것. 관련법도 이른바 ‘느린 학습자 지원법’으로 불리는 초·중등교육법 28조가 전부다. 성인을 위한 구체적인 지원 대책은 찾기 힘들다.

경계선 지능 청년을 오래 관찰해 온 전문가들은 이를 ‘역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원에서 이들만 유독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박현동 관장은 “경계선 지능 아이들은 ‘심리·정서적 차상위계층’이다. 선천적으로 타고났을 수도, 후천적으로 퇴행했을 수도 있지만 이들 역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의 직업 교육 프로그램에서 디자인(왼쪽)과 디지털 인쇄 교육을 받고 있는 경계선 지능 청소년들. 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제공


현재 경계선 지능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역할은 각 지역 복지관이나 부모 모임 등을 통해 산발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런 프로그램이 체계화될 수 있도록 입법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전국 아동보호시설의 약 86%는 경계선 지능 아동에 특화된 프로그램이 없다. 서해정 부연구위원은 “IQ가 70이면 장애인으로 등록돼 각종 지원을 받는데 71부터는 혜택을 못 받는다. 장애인 등록이 안 되더라도 교육이나 일자리 측면에서 포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계선 지능 청년들은 성공의 경험을 쌓는 것이, 보호자들은 이들의 자립 가능성을 믿는 것 중요하다. 배승민 교수는 “지적장애 3급도 훈련만 되면 어느 정도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경계선 지능은 자립이 어렵다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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