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출항 50분만에 ‘쾅’… 낚싯배 자리싸움 禍 불렀나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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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산도-안면도 잇는 대교 들이받아 3명 사망, 의식불명 포함 19명 부상
해경, 항해 부주의로 사고 발생 추정… 180척 새벽마다 ‘포인트’ 선점 경쟁
통상 속도 2배로 달리다 사고 난듯

충남 보령에서 선장을 포함한 22명이 탄 낚싯배가 교각을 들이받아 낚시객 3명이 숨졌다. 해경은 앞이 보이지 않는 새벽시간에 이른바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해 서두르다 사고가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31일 오전 5시 40분경 보령시 원산도와 태안군 안면도를 잇는 원산안면대교(1.75km) 아래를 지나던 10t급 어선 ‘푸른바다3호’가 교각을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낚시객 A 씨(62) 등 3명이 숨지고 19명이 부상을 입었다. 부상자 중 30대 1명은 소방헬기로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의식 불명 상태다.

사고 선박은 오전 4시 50분경 보령시 오천항을 출항해 녹도 용섬으로 가던 중이었다. 배에는 선장 B 씨(47)를 포함해 전국에서 2∼5명씩 팀을 이뤄 예약한 낚시객 22명이 타고 있었다.

배 정원은 22명으로 초과 승선은 아니었고 선장에 대한 음주 측정에서도 이상이 없었다. 낚시객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있었고 출항 당시 파고는 1m 정도로 안개 없이 비교적 잔잔했다. 낚시객 C 씨는 “선실 안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배가 크게 흔들렸다”며 “배 앞쪽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큰 변을 당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해경은 출항 시간이 동트기 전이라 선장이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교각은 원래 색이 어두워 새벽이나 밤에는 식별이 어려운 데다 빛 반사지나 충돌방지 조명 같은 안전장치도 하나 없었다.

해경은 선장 B 씨에 대한 과속 운항 여부를 조사 중이다. B 씨는 속도가 15노트(시속 약 27km) 정도였다고 진술했지만 해경 조사 결과 18노트(시속 약 33km)까지 운항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낚싯배에 대한 구체적인 속도 규정은 없다. 다만 교량 주변에서는 안전을 위해 10노트 이하로 운항하는 것이 보통이다.

최근 낚싯배 선장들은 고기가 잘 잡히는 이른바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속도를 높여 출항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 규정상 낚싯배 운항시간은 오전 4시∼오후 8시로, 해가 늦게 뜨고 빨리 지는 겨울철에는 어둠 속에서 항해가 불가피하다.

최근 5년(2015∼2019년)간 낚싯배 사고 사망자는 모두 37명. 지난해 발생한 306건의 사고 중 160건이 주말과 공휴일에 일어났다. 시간대별로는 오전 6∼9시가 69건으로 가장 많다.

오천항에는 현재 180여 척의 낚싯배가 성업 중이다. 선주들이 물고기가 잘 잡히는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해 주로 새벽 운항에 나선다. 면사무소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바다 낚시객이 늘면서 평일에도 차 세울 공간조차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해경 관계자는 “선장의 항해 부주의로 사고를 낸 것에 무게를 두고 있다”며 “선장이 현재 입원 중이지만 선장과 낚시객을 상대로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령=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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