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호트 격리’ 요양보호사 “추가 확진 두려워…매순간 위험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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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0년 10월 24일 0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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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경 질병관리청장. © News1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 News1
“돌이켜보면 간호사들이 어르신들 검체 채취할 때가 가장 위험했던 것 같아요. 저는 방호복이 없어 덴탈 마스크만 쓴 채 움직이지 않도록 어르신들을 붙잡고 있었거든요.”

요양원에서 동일집단(코호트) 격리됐다는 요양보호사 김경자씨(가명·여)의 말이다. 그는 코호트 격리 기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험에 노출됐으며 요양원에 내려진 방역 지침은 현실적이지 못했다고 그날을 회상했다.

몇 달 전, 요양원에서 확진자가 나오면서 김씨의 생활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요양원 전체는 즉시 코호트 격리됐고 김씨는 ‘멘붕’에 빠졌다. ‘나는 나이가 많은 데다 기저질환도 있는데 어떡하지?’, ‘지금 어르신을 돌봐도 되는 건가?’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메웠다.

아들이 가져온 혈압약을 받으러 복도를 걸어가다 요양원 직원에게 혼나기도 했다. 식사도 부실했고 초기에는 빨래도 직접 했다. 침대가 아닌 요양원 바닥에 누워 잠을 자려니 잠도 오지 않았다.

또 다른 요양원에서 관리직으로 일한다는 박우식씨(가명)는 코호트 격리 통보를 받고 보건소와 구청에 항의했다. 요양원 근무자와 어르신들이 모두 위험에 노출돼있는데 요양원에 있다는 이유로 갇혀있어야 한다는 건 불합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그의 의견은 묵살됐다.

지난 20일 요양원에서 코호트 격리가 됐다는 사람들을 만났다. 확진자가 발생한 날, 요양원에 있었다는 이유로 코호트 격리가 된 이들은 방역 허점을 지적했고 감염 걱정에도 일을 계속해야 하는 현실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고백했다.

◇“덴탈 마스크만 쓰고 검체 채취 보조…위반할 수밖에 없는 지침도”

김씨는 검체 채취를 보조할 때가 가장 위험했다고 말한다. 그는 코호트 격리나 코로나19 자체를 모르는 어르신들이 몸이나 얼굴을 움직이지 않도록 잡고 있었다. 그나마 간호사들은 방호복을 입고 검체 채취를 진행했지만 요양보호사들에게는 덴탈 마스크가 전부였다.

김씨는 “그때는 간호사를 도와줘야 한다고 해서 무서운 줄도 모르고 했는데 돌이켜보면 아찔했던 상황”이라며 “추가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코호트 격리 생활에 적응할 때쯤, 그에게 지침이 하나 내려왔다. 어르신들이 머무르는 생활실에 하루에 3번만 들어가고 평소에는 문을 닫아놓으라는 것.

하지만 김씨는 이런 지침이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김씨는 “어르신 식사 보조부터 대소변 처리까지 하는데 하루에 세 번만 들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어르신들이 필요한 게 뭔지 알려면 문을 열고 소리를 들어야 하는 데다 어르신들은 문을 닫아놓으면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침이 현실적이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위반할 수밖에 없었다며 요양원에 적합한 지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요양보호사가 2주간 심리적 불안에 업무 과중을 겪어 몸이 상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평상시 요양원은 교대 근무로 돌아가지만 코호트 격리가 되면서 한정된 요양보호사들이 2주 내내 일하게 되는 것. 요양보호사는 허리를 굽히고 힘을 쓰는 일을 하기 때문에 근골격계 질환에 걸리기 쉽다고 알려졌다.

평소 허리가 좋지 않던 요양보호사 1명은 코호트 격리를 겪고 나서 건강이 악화해 퇴사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김씨는 “요양보호사들이 나이가 많아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중간에 교대를 해주거나 몇 시간이라도 요양원이 아닌 집에서 자가격리를 하도록 허용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누군가 코호트 격리됐다면 돕고 싶어…방호복 종일 입어야”

“2주 조금 넘게 코호트 격리가 됐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주변에 누가 코호트 격리됐다고 하면 저도 같이 들어가서 도와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다른 요양원에서 관리직으로 일한다는 박씨는 코호트 격리된 요양보호사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쓰여 있었다고 했다. 확진자가 나올 때마다 ‘여기 있다가 나도 걸리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는 “안전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근무자와 어르신도 위험에 노출돼있는데 갇혀있으라고만 하는 건 너무하다”고 호소했다.

요양보호사들은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방호복을 착용해 항상 지쳐있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라서 다행이지 여름에는 에어컨도 못 틀고 일해야 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 그는 “어르신과 요양보호사들의 안전에 집중할 시간에 취재진이 들이닥쳐 상호 등을 찍어가니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고 고백했다.

◇전문가 “코호트격리 지침 이해 안 돼…바이러스 배양소 만드나”

경기 광주 SRC재활병원, 부산 해뜨락요양병원, 서울 다나병원 등 병원에서 확진자가 속출하면서 코호트 격리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코호트 격리가 오히려 감염병을 확산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실제 일부 코호트 격리됐던 시설에서는 잠복기가 지났는데도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 도봉구 다나병원에서는 지난달 28일에 최초로 입원환자 2명이 확진 판정을 받고 시설이 코호트 격리 조치됐지만 지난 22일에도 확진자가 발생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잠복기 14일이 지난 이후에도 감염자가 계속 발생할 때에는 시설 내 전파 가능성도 일부 있는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코호트 격리 시설에서는 1인 1실 등 감염병 예방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현재 방역 당국은 코호트 격리 시 침대를 2m 간격으로 배치하고 커튼이나 가림막 등으로 침대 사이를 막으면 한 방에 같이 있더라도 각자 격리된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김씨 역시 “한 방에 어르신들이 4명씩 있었다”고 증언했다.

정부는 코호트 격리 조치가 내려졌을 때 적용되는 구체적인 대응 지침을 보완하고 시설 내 전파를 차단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는 방침이지만 뒷북 대응이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코호트 격리 조치로 근무자들의 인권은 무시되고 있다는 평가다. 근무자들은 감염 우려에도 강도 높은 업무를 지속해서 볼 수밖에 없으며 일부 생활필수품도 보급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경기지역본부는 집단감염이 발생한 광주 SRC재활병원과 관련해 “현장에서 코호트 격리된 부족한 간호인력이 12시간씩 2교대로 업무를 진행하고 있다”며 “간병인 확진자가 많아 1대1 대면 간병이 필요한 재활환자에 대한 간병업무까지 떠맡고 있어 최일선 의료진의 피로도가 한계에 달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실제 현장에서는 긴급히 코호트 격리된 이후 여성보건용품을 비롯한 생활용품과 생수 확보도 어렵고 갈아입을 속옷도 없는 상황에서 불안과 당혹 그리고 공포감 속에 며칠씩을 보내야 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요양시설, 정신병원 등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면 간병인, 요양보호사, 의료진들이 자가격리돼 인력 충원이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지원 방안을 논의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도 현재 정부의 ‘코호트 격리’ 지침이 비상식적이라며 시설을 바이러스 배양소로 만드는 격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하고 있다.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대응 민관합동위원장을 지냈던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코호트 격리라는 건 동일한 감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같이 격리하는 것”이라면서 “그런데 현재 방역당국이 말하는 코호트 격리는 감염병에 걸린 사람과 걸리지 않은 사람이 모두 같은 공간에 있게 해 바이러스가 전파되도록 하는 방식”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격리병원을 임시로 만들거나 생활치료센터를 활용해 코호트 격리된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자가격리하도록 도와야 한다”며 “방역 당국이 코호트 격리라는 명목으로 병원이나 요양원을 바이러스 배양소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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