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없이 발탁된 박원순 시장 비서…‘5년간의 악몽’ 고소로 끝났다

  • 뉴스1
  • 입력 2020년 7월 13일 18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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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박원순 서울시장 발인식을 마친 유가족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든채 운구차를 타고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故 박원순 서울시장 발인식을 마친 유가족이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영정을 든채 운구차를 타고 서울시청으로 향하고 있다. 2020.7.13/뉴스1 © News1
고(故)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상을 떠난지 나흘째이자 발인이 진행된 13일, 박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 A씨 측이 폭로한 박 시장의 성추행 정황은 구체적이었고 적나라했다.

고소인 측은 평범한 공무원이었던 A씨가 박 시장의 비서로 발탁된 후 고소에 이르기까지의 5년 간을 비교적 구체적인 상황으로 제시하며 ‘위력에 의한 성추행’으로 규정했다.

◇“갑작스런 서울시 연락…비서직 수행 이후 성추행 지속”

이날 고소인 측이 내놓은 주장에 따르면 A씨는 공무원으로 임용돼 원래는 서울시가 아닌 다른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서울시에서 연락이 와 시장실 면접을 보게 됐다.

이후 A씨는 비서실에서 근무하라는 통보를 받고 박 시장의 비서로 일하게 됐다. 하지만 A씨는 시장비서직으로 지원한 적이 없었다.

A씨 측은 박 시장의 비서로 일하면서 지속적으로 위계에 의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의 비서로 일하던 4년뿐만 아니라 이후 다른 부서로 발령 났음에도 성추행이 계속됐다고도 했다.

A씨 측에 따르면 범행 장소는 시장 집무실, 시장 집무실 내 침실 등이다. 셀카를 찍자며 신체를 밀착하거나 A씨 무릎의 멍을 보고 ‘호 해주겠다’며 무릎에 입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A씨 측은 박 시장이 A씨를 내실로 불러 ‘안아달라’며 신체 접촉을 했다고도 했다. 퇴근 후에는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에 초대해 지속적으로 음란한 문자나 속옷만 입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A씨의 변호를 맡은 김재련 변호사(법무법인 온·세상)는 “(A씨가)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도 문자가 왔기 때문에 이것을 본 친구들도 있다”며 “알고 지낸 기자에게도 (A씨가) 텔레그램 문자를 보여준 적이 있다”고 했다.

또 김 변호사는 “동료 공무원도 (A씨가) 전송받은 사진을 본 적이 있으며 비서관에게 부서 이동을 요청할 때 이런 성적 괴롭힘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서울시 내부에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피해를 사소화’하는 반응이 이어졌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라며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 들이라거나, 비서의 업무를 시장의 심기를 보좌하는 역할로 일컬었다”며 “더 이상 피해가 있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 소장은 “피해자는 부서변경을 요청했으나 시장이 이를 승인하지 않는 한 불가능했다”며 “가해의 수위는 점점 심각해졌고 심지어 부서 변경이 이루어진 이후에도 개인적 연락이 지속됐다”고 설명했다.

◇김재련 변호사 찾아가 박 시장 경찰 고소·증거 제출

A씨는 오랜 고민 끝에 지난 5월12일 김 변호사를 찾아 1차 상담을 받았다. 구체적 피해 내용은 2차 상담이 있었던 5월26일 전했다. 김 변호사는 5월27일부터 법률적 검토에 들어갔다.

헌법재판소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 위원, 서울해바라기센터 운영위원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 변호사는 국내 대표 여성·성폭력 문제 전문가다.

김 변호사는 안태근 전 검사장에 대한 성추행을 고발한 서지현 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행을 고발한 비서 김지은씨 등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들을 담당한 바 있다.

7월8일 오후 4시30분 A씨와 김 변호사는 서울지방경찰청에 박 시장을 상대로 한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에 적은 혐의는 성폭력특례법(통신매체이용음란, 업무상위력행위) 위반과 형법상의 강제추행이었다.

A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나온 텔레그램 관련 증거와 박 시장이 올해 2월6일 A씨를 텔레그램 비밀 대화방에 초대한 캡처를 경찰에 제출했다. 2월6일은 A씨가 비서실이 아닌 타 부서에 일할 때였다.

김 변호사는 “비서실 근무를 하지도 않는데 박 시장이 텔레그램으로 비밀대화를 요구할 이유가 하등 없는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정보유출을 막기 위해 고소장 제출과 동시에 1차 고소인 진술조사가 진행됐다. 수사팀에 보안 유지를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김 변호사도 동행했으며 고소인 진술조사는 다음날인 7월9일 오전 2시30분에야 끝났다.

김 변호사는 “인터넷상 A씨는 사직한 것으로 나오는데 2020년 7월 현재 공무원으로 재직하는 사람”이라고 밝혔다.

고소 직후 A씨와 김 변호사,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면담했고 이들 단체는 A씨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장은 “이 사건을 접하고 피해자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형사사법 절차상 수사·재판을 제대로 거쳐 가해자는 처벌을 받고 피해자는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고소장 제출 다음날 박 시장 실종, 숨진 채 발견

고소장을 제출한 다음 날이자 A씨가 고소인 진술조사를 마치고 나온 7월9일 오전부터 박 시장은 일정을 취소하고 연락이 두절됐다.

9일 오후 5시17분 실종 신고가 접수된 후 경찰이 수색에 나섰으나 10일 오전 0시1분 서울 성북구 북악산 숙정문과 삼청각 중간 지점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소장은 “고소 당일 피고소인(박 시장)에게 모종의 경로로 수사상황이 전달됐고 피고소인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피해자는 온·오프라인에서 2차 피해를 겪는 등 더한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박 시장의 죽음 이후 A씨를 상대로 온·오프라인에서 2차 가해가 이어지자 A씨 측은 이에 대한 이날 추가 고소장을 서울지방경찰청에 냈다. 또 A씨 신상과 피해 내용을 담은 문건을 유포한 사람도 처벌해달라는 고소장도 함께 제출했다.

A씨 입장문을 통해 “긴 침묵의 시간, 홀로 많이 힘들고 아팠다”면서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하고 되물었다.

A씨 측은 Δ경찰은 현재까지 조사내용을 토대로 사건에 대한 입장을 표할 것 Δ서울시는 조사단을 구성해 진상을 밝힐 것 Δ정부, 국회, 정당은 책임 있는 행보를 위한 계획을 공개할 것을 요청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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