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원장님, 나쁜 짓 했죠’ 따지는 판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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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아 모집 중단” 밝힌 경기 광주 유치원 이사장 격정 토로

그래픽=채한솔 인턴
그래픽=채한솔 인턴
25일 정부의 고강도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 대책에 전국의 일부 사립유치원이 원아 모집정지 및 폐원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이어졌다. 그중 경기 광주에서 6개 유치원을 운영한다는 A 이사장이 학부모들에게 내년부터 만 3세 신입원아 모집정지 통보를 한 소식이 가장 큰 관심을 받았다. A 이사장이 운영하는 유치원에 광주지역 전체 유아의 절반이 다닌다는 사실에 경기도교육청이 비상대책반을 꾸리고 교육부가 직원을 급파했다.

일각에서는 A 이사장이 6개 유치원을 운영하는 ‘기업형’이라며 지역에서의 영향력을 무기 삼아 몽니를 부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실제 그가 운영하는 유치원 중 1곳은 비리 유치원 명단에 포함됐다. A 이사장은 정말 ‘장사꾼’일까? 그래서 고강도 대책이 나오자 모집정지 선언을 한 걸까? 25일 밤 A 이사장과 전화 인터뷰를 했다.


―내년부터 만 3세 신입원아를 모집 정지한다고 들었다.


“경기 광주지역에서 유아교육을 한 지 23년째다. 23년 동안 6개 유치원을 세웠고 광주 지역 유아 절반이 우리 유치원에 다닌다. 지금까지 광주에서 유아교육은 내가 1등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아왔다. 그런데 유치원 감사 결과 실명 공개 뒤 하루아침에 ‘비리 원장’이 됐다. 일곱 살 아이들이 뉴스를 보고 아침에 나한테 ‘원장님 나쁜 짓 했죠’ ‘내 돈으로 노래방 갔죠’라고 말했다. 이런 말을 들으니 자괴감이 들었다.”

―감사에서 적발된 건 사실 아닌가.

“억울하다. 23년간 유치원 하면서 이전에도 감사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예전에는 문제없다던 게 갑자기 2013년 이후 감사에서 문제라고 했다. 영화 제목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다. 어느 날 갑자기 감사관이 와서 ‘이것은 틀렸다’고 하는데 당혹스러웠다. 우린 하던 대로 했을 뿐이었다.”

―감사 지적사항을 보면 설립자에게 수천만 원을 무단 이체하는 등 회계집행 부적정으로 적발된 게 많다.

“23년간 유치원 6개 세우는 데 200억 원 투자했다. 국가에서 10원도 지원받지 않고 내 사비 털어서 지금까지 했다. 그런데 이사장이 업무추진비로 유치원에서 400만 원씩 가져갔다고 감사 적발된 것이다. 이사장은 무보수 명예직인데 왜 가져갔느냐는 게 교육부 논리다. 난 정말로 그게 그렇게 잘못된 것인지 지금도 모르겠다. 유치원 회계에 대한 규칙은 2017년 9월 처음 나왔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감사는 공립유치원 기준을 잣대로 감사했다. 그런데 200억 원 들여 유치원 세운 나랑 공립유치원이랑 어떻게 같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도 국가는 내 잘못이고 보전하라고 해 다시 돈을 다 채워 넣고 시정명령에 따랐는데 몇 년 지나 2018년에 터뜨리고 ‘비리 유치원’이라고 그런다.”

―정부로부터 누리과정 지원금·각종 보조금 받지 않나.

“자꾸 누리과정 지원금 얘기하는데 그것은 사립유치원에 준 것 아니지 않나. 학부모들에게 직접 지급해야 하는데 (정부가) 귀찮으니까 유치원에 한 번에 다 넣어준 것 아닌가. 누리과정 지원금 없었으면 유치원들이 학부모들에게 받았을 돈이다. 우리는 대리수령만 했다. 정치가들이 표 얻으려고 학부모들에게 22만 원씩 지원하고 나서 왜 그걸 사립유치원이 횡령했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유치원이 여럿인데 8개월 전 60억 원을 들인 새 유치원은 왜 설립했나.

“처음 유치원을 시작한 건 광주지역에 우리 아들이 다닐 유치원이 없어서였다. 유치원도 없고 계속 (추첨에) 떨어져 차라리 내가 하나 세우자 한 거다. 이번에는 광주에 새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는데 유치원이 부족했고 그 때문에 기존의 우리 유치원 대기자가 400명이 넘어갔다. 교육청은 나 몰라라 하고 있고…. 그쪽에 미리 사둔 땅이 있어 건물을 지었다. 나는 사립이니까 (아껴서) 60억 원 들여 지었지 공립은 (정부 돈으로 하니까) 단설 하나에 100억 원을 들여 지어야 한다. 연간 운영비도 10억∼20억 원이 든다. 내가 지은 단설 유치원 6개를 기준으로 하면 정부가 600억 원 들여 건물 짓고 연간 최대 120억 원을 투자해야 운영된다.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 달성하려면 1조 원이 필요하다. 국가가 무슨 수로 그 비용을 다음 세대에 지울지 모르겠는데 나중에 아이들도 줄어드는데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그래도 돈이 벌리니까 유치원 계속 한 것 아닌가.

“아이들이 좋아서 했다. 돈만 따지면 내가 유치원 다 폐원하고 요양병원으로 바꾸면 한 달에 4000만 원씩 임대료 들어오는데 그게 낫지 않겠나? 그래도 유치원 필요한 곳 있고 애들 뛰어노는 모습 보는 게 좋아서 한 거다. 그런데 이젠 아닌 것 같다. 지금 6개 유치원 중 3곳은 정원이 60∼70% 정도다. 경제논리로 따지면 폐원해도 된다. 그런 상황에 처한 사립유치원이 많다. 가만히 있어도 곧 폐원할 사립유치원들이 줄을 설 것이다. 그런데 왜 국가가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 계속 엄포만 놓으며 우리가 흉악범도 아닌데 때려잡겠다는 얘기만 한다.”

―유아교육 앞으로 어떻게 되리라 보나.

“제일 답답한 게 국가의 획일화다. 누리과정 들어오고 나서 교재가 생겼다. 유치원은 원래 교재가 있으면 안 된다. 교사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교구를 이용하고 밖에 나가 뛰어놀아야 하는데 요즘은 책이 대신한다. 예를 들어 숲에 있는 유치원이라면 주 1회 숲에 가서 수업을 해야 하는데, 책으로 숲을 배우고 숲 교육이라고 한다. 말이 안 된다. 이번 비리유치원 파문이 가라앉아도 아이들에게 이미 유치원장은 나쁜 사람이 돼버렸다. 유치원 문을 닫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교육자로서의 명망이 다 깨져버렸다는 거다. 더 이상 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빠져주고 국가가 대신 하겠다니 많은 예산 들여 고용창출하면 좋을 것 같다. 아마 모든 사립유치원장 마음이 같다고 본다.”

▶ [인터뷰 전문] “원장님 나쁜 짓 했죠” 아이들 한마디에…‘1등 자부’ 물거품

임우선 imsun@donga.com·조유라 기자
#유치원비리#사립유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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