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소 외부불씨 막는 ‘인화방지망’ 26년간 육안검사만 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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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저유소 또 드러난 안전 부실
“기름 차있어 불 붙여보는 검사못해”
자체-정밀진단 때마다 청결만 살펴… 수명 2년짜리 장치 교체확인 안해
효과 큰 ‘화염방지기’ 설치 규정, 의무화 완화 전까지 11년간 어겨


7일 화재가 발생한 대한송유관공사 경인지사(고양저유소)는 1992년 건설된 이후 26년간 저장탱크에 외부 불씨 유입을 막아주는 인화방지망(flame screen)을 제대로 점검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인화방지망보다 성능이 좋은 화염방지기(flame arrester)는 설치돼 있지 않았다.

고양저유소에는 탱크 외부 화재 감지 영상장비, 유증환기구 회수 장치 등 화재 방지 시설이 없었던 것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외부 불씨 유입을 막을 장치까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화재를 키웠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송유관공사의 저유소를 11년 주기로 개방점검하는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은 화재가 발생한 탱크에 설치된 인화방지망은 육안으로만 청결 상태를 확인했다고 10일 밝혔다. 인화방지망은 구리로 된 얇은 금속망이다. 소방산업기술원 관계자는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려면 실제로 불을 붙여봐야 하는데 안전상의 문제로 가능하지 않다”며 “육안으로 청결 상태를 확인하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기능을 점검하기 어렵다면 교체주기를 확인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 하지만 소방산업기술원, 관할 소방서 등에 따르면 외부 개방 점검뿐 아니라 매년 실시하는 자체 점검에서도 인화방지망 교체 여부는 점검 항목에서 빠져 있다. 인화방지망의 통상적인 교체주기는 2년이다.

고양저유소가 준공된 1992년에 시행되던 ‘산업안전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인화성 액체를 취급하는 설비로부터 대기에 증기 또는 대기를 방출할 때’에는 화염방지기를 설치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화재 당시 440만 L의 휘발유가 저장돼 있던 고양저유소의 저장탱크에는 인화방지망만 있었을 뿐 화염방지기는 없었다. 2003년 이 규정은 인화방지망을 설치한 경우 화염방지기 설치 의무는 없는 것으로 개정됐다. 고양저유소는 준공 이후 2003년까지 이 규정을 어긴 것이다.

화염방지기는 철사를 꼬거나 금속으로 된 구슬을 여러 번 겹쳐서 만든 두꺼운 금속망이다. 외부에서 화염이 유입되더라도 열기가 금속에 흡수돼 불길이 유증기에 붙지 않도록 차단한다. 인화방지망보다 화재 방지 효과가 훨씬 크고 가격도 비싸다. 고양저유소 외에 송유관공사가 관리하는 저유소 7곳도 대부분 1990년대 전후에 준공됐지만 화염방지기 설치 여부는 확실치 않다. 송유관공사 측은 “확인하기 어렵다”고만 밝혔다.

유승훈 연합안전엔지니어링 이사는 “두 장치 모두 외부에서 불길이 유입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지만 화염방지기의 방화 성능이 월등하다”며 “의무사항이 아니더라도 대용량 저장소엔 화염방지기를 설치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편 자유한국당 장석춘 의원에 따르면 대한송유관공사는 올해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안전한국훈련평가에서 A등급을 받았다. 송유관공사 경인지사는 5월 18일 고양저유소에서 지진 발생 후 화재 진압, 손상 설비 복구 훈련을 했다. 장 의원은 “5개월 전 재난대비훈련을 했는데도 화재 사전 대응, 사후 초동 조치가 미흡했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지훈 easyhoon@donga.com·김재희 / 수원=이경진 기자
#저유소#화재#인화방지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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