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다 끝난 300억 ‘서울의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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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대형 공공미술 사업 취소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하다 최근 폐기를 결정한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의 시작’의 완성 이미지. 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지난해부터 추진하다 최근 폐기를 결정한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의 시작’의 완성 이미지. 서울시 제공
서울시가 “서울을 알릴 수 있는 대표적인 공공 미술작품을 설치하겠다”며 추진했던 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서울의 시작’이 전면 취소됐다. 법적, 행정적 철자에 대한 충분한 검토 없이 사업을 진행하는 바람에 괜한 행정력 낭비를 불러왔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2일 “관련 법 검토 등을 종합한 결과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려가 있어 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사업 폐지를 지난달 말 최종 확정했다.

서울의 시작 프로젝트는 지난해 초 ‘서울의 문’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됐다. 인천국제공항과 김포공항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서울이 이곳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동시에 인상 깊은 기억을 심어주겠다는 뜻으로 ‘문(門)’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서울 전체를 미술관으로 만들자는 취지 아래 2016년 시작된 ‘서울은 미술관’의 대표 프로젝트였다.

지난해 5월 시민 의견 조사를 시행한 결과 찬성 의견이 70%를 넘어 본격적으로 준비가 시작됐다. 그러나 6월 일반 공모로 작품을 모집한 결과 56개 중 공공미술 자문회의의 1차 심사 문턱을 넘은 작품이 하나도 없었다. 서울시는 작가를 초청해 작품을 공모하는 지명공모로 공모 방식을 바꾸기로 하면서 사업명을 ‘서울의 시작’으로 바꿨다. 사업 대상지를 한강공원 강서지구(방화대교 남단 인근)로 변경하고 사업 예산을 13억 원으로 높였다.

4명의 지명 작가가 내놓은 후보 작품을 가지고 11월엔 시민 선호도 조사를 벌인 결과 민현식 작가(72)가 구상한 동명의 작품안인 ‘서울의 시작’이 당선작으로 선정됐다. 서울 지형을 추상화한 지름 48m, 높이 40m의 원기둥형 수변광장을 만들고 시민들로부터 가로세로 15cm 크기의 화강석을 기증받아 작품을 완성한다는 내용이었다. 맹꽁이 생태를 관찰할 수 있도록 한다는 환경 친화적 내용도 들어갔다. 서울시는 약 1500만 원을 들여 민 작가에게 기본계획 수립을 의뢰했다. 11억 원을 들여 기초 기반시설을 세우고 기증 화강석 100만 개가 모일 때마다 재공사와 계단 등을 올리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완성해 나간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4월 초에 나왔다. 총 제작비 300억 원이 넘는 초대형 프로젝트가 됐다.

그러나 뒤늦게 파악된 두 가지 현실적 문제가 프로젝트의 발목을 잡았다. 첫 번째는 설치 위치가 법적으로 부적절했다는 점이다. 서울시는 작품 용역이 거의 완성돼 가던 3월 국토교통부에 하천 점용 허가와 관련해 문의를 했다. 하천법에 따라 하천구역에 작품을 새로 짓기 위해서는 관할 관청인 서울지방국토관리청의 허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토부에서는 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고정 시설물은 교각 등이 아니면 설치가 어렵다는 답변을 내놨다. 작품 선정 단계에서 이런 우려가 실무자들 사이에서 일부 제기됐으나 제때 반영되지 못했다. 서울시는 뒤늦게 장소를 변경해 보려 했지만 지름이 48m에 달하는 작품을 배치할 만한 공간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시민들로부터 화강석을 모아 작품을 완성한다는 구상도 뒤늦게 문제가 됐다. 실제 완성되는 데 10년이나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데다 시민들이 기부한 화강석을 처리하는 행정 절차도 복잡해 과업을 마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결국 6월 공공미술위원회에서 사업 폐지를 승인했고 지난달 최종 폐지가 결정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작품의 취지와 내용은 매우 좋았는데 안타깝다. 심사 당시에 법적 검토 등을 충분히 해야 했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권기범 기자 ka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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