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마틴 루서 킹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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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이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자명한 진리로 여긴다’라는 신념을 실현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

마틴 루서 킹(1929∼1968·사진)이 55년 전 8월 28일 워싱턴에서 한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제목의 연설입니다. 1963년 그날은 노예 해방 100주년을 기념하여 미국 워싱턴에서 평화대행진이 열린 날입니다.

킹 목사는 인도 간디의 영향을 받아 비폭력주의에 입각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일관되게 해왔습니다. 시민 불복종은 합법적인 모든 수단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부당한 권력 행사가 계속될 경우 제재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부당함에 맞서는 최후의 저항입니다. 그것을 비폭력 평화주의의 원칙에 따라 수행하여 제도와 관행을 바꿔놨으니 인류의 진보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로 기록될 만합니다.

1955년 12월 어느 날 미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버스를 탄 흑인 로사 파크스는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양보하라는 버스 기사의 지시를 거부하다 경찰에 체포됩니다. 이후 킹 목사는 흑인들을 규합하여 381일 동안이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흑인들은 학교와 직장을 걸어서 가고 흑인이 모는 택시만 이용하는 방식으로 비폭력 저항운동을 계속했습니다. 5만여 명이 참여하는 끈질긴 요구에 연방대법원은 마침내 로사 파크스의 유죄 판결을 무효화하고 버스에서의 흑백 차별을 없애라는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1956년 공공 운송 수단에서의 인종 차별은 위헌이라는 대법원 판결과 1964년 공공시설에서의 인종 차별을 금지하는 연방 시민권법 역시 몽고메리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을 계기로 얻어낸 변화입니다.

그 뒤 킹 목사는 1963년 워싱턴 대행진을 비롯한 수많은 운동을 이끌었고 흑인이 백인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어 내기 위한 공민권 운동을 추진했습니다. 1964년에는 이러한 공로가 인정되어 노벨 평화상을 받았고 1986년 미국 의회는 킹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탄생일인 1월 셋째 주 월요일을 ‘마틴 루서 킹 데이’라는 국경일로 지정했습니다. 그러나 킹 목사는 1968년 4월 멤피스에서 흑인 청소부 파업을 지원하던 도중 괴한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의 나이 불과 39세에 세상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고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2008년 8월 28일 미국 덴버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버락 오바마는 민주당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을 합니다. 이날 연설에서 오바마는 “케냐 출신 남성과 캔자스 출신 여성은 유복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뜻하는 게 무엇이든 이룰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그들은 살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 선거는 21세기에도 미국의 약속을 살아 숨쉬게 할 기회입니다”라는 연설을 했습니다.

4개월 뒤 미국은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며 인종적 굴레에서 벗어나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국을 비롯한 수많은 나라에서 인종 갈등이 여전합니다. 인종뿐만 아니라 성, 종교, 민족, 세대 간의 갈등 등 곳곳에서 균열이 나타납니다. 인류가 투쟁을 통해 허물어 온 차별의 장벽을 다시 쌓는 반역에 맞서는 것, 차이를 인정하되 차별을 용납하지 않는 것은 우리 세대의 몫입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
#마틴 루서 킹#평등#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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