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美추방 두렵지만 친구들 위해 용기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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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첫 국정연설에 초대됐던 한국계 미등록 청년 조정빈 씨

미국에서 미등록 청년으로 살고 있는 한국계 조정빈 씨(왼쪽)와, 그를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에 초청한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 조정빈 씨 제공
미국에서 미등록 청년으로 살고 있는 한국계 조정빈 씨(왼쪽)와, 그를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에 초청한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 조정빈 씨 제공
“제 이야기가 언론에 나오면 미국인들이 뭐라고 할지 아직도 무서워요. 그래도 두려움에 침묵하는 미등록(불법 체류) 친구들을 위해 용기를 냈습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국정연설에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 초청으로 참석한 한국계 미등록 청년 조정빈 씨(24)는 1일 동아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미등록 청년 추방 유예 제도(DACA·다카)’ 수호 운동에 나서게 된 계기를 이렇게 밝혔다. 자신도 미등록 신분이라 언제든 이민 당국에 체포돼 추방될 수 있지만 한국인도, 미국인도 아닌 채 살아온 한국계 ‘그림자 아이들’을 위해 공개석상에 섰다는 것이다.

“지역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고 거리에서 DACA 수호 캠페인을 벌이긴 하지만 아직도 친한 친구들에겐 제 신분을 말하지 못하고 있어요. 다 알려진 마당에 말할 수 있을 법한데 왜 이런지 저도 모르겠어요.”

조 씨는 7세 때인 2001년 전북 지역에서 살던 부모를 따라 미국에 왔다가 브로커의 사기로 비자를 제대로 발급받지 못해 온 가족이 미등록 신세가 됐다.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악착같이 남동생과 조 씨를 키우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누구도 원망할 수 없었다.


“열세 살 때 학교 농구팀에 들어가려 하니 신분증을 내야 했어요. 부모님한테 이 얘길 하니 소리 없이 우셨어요. 직감적으로 우리가 ‘다른 사람’임을 깨달았죠.”

조 씨는 2013년 버지니아공대에 합격했지만 첫 학년을 포기해야 했다. 미등록 신분이어도 입학은 허락됐지만 미국 시민보다 훨씬 많은 학비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두 번째 학년부터 한국 음식점 사장님을 비롯한 한국 교민 사회 기부금을 받아 대학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며 “나를 도와준 분들을 생각하면 비슷한 친구들을 도와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뒤 미주한인봉사교육단체협의회(NAKASEC)에서 DACA 권익 옹호 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도입한 DACA를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폐기하겠다고 선포했기 때문이다. DACA란 부모와 함께 불법 입국해 학교를 다니거나 취업한 이들이 체류하도록 돕는 행정명령이다. 추방의 불안에서 벗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는 뜻에서 ‘드리머’라 불리는 이들은 약 80만 명에 이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정연설에서 180만 명의 미등록 젊은이들에게 시민권을 주겠다고 발표했지만 조 씨는 이를 신뢰하지 않았다. 그는 “언제 입법화될지 모르고 실제 시민권을 가지려면 절차상 12년이 걸린다”며 “트럼프는 언제 마음을 바꿀지 몰라 언제 쫓겨날지 두렵기만 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당장 10월경 만료될 취업 허가증 때문에 어떻게 먹고살지가 걱정이다.

전국아시안아메리칸위원회(AAPI)에 따르면 미국 내 한국계 미등록자는 17만4677명으로 추산된다. 인도(45만8663명), 중국(38만7369명), 필리핀(24만7304명)에 이어 아시아계 중 4위다. 조 씨는 “한국계 미등록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많다. DACA 대체 법안이 하루빨리 통과돼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라고 전했다.

그는 한국 내 미등록 청소년은 대학 입학도, 취업도 허락되지 않는다는 말에 크게 놀라며 “그 아이들이나 우리나 모두 사람이다. 기본적 인권은 보호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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