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처럼 꾸민 교실서 책 읽고 블록놀이… “학교가 즐거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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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교 ‘꿈을 담은 교실’ 가보니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용암초 ‘꿈을 담은 교실’에서 1학년 학생들이 집 모양의 구조물 안에 설치돼 있는 무대와 바닥에 다양한 자세로 앉아 교사가 읽어주는 책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용암초 ‘꿈을 담은 교실’에서 1학년 학생들이 집 모양의 구조물 안에 설치돼 있는 무대와 바닥에 다양한 자세로 앉아 교사가 읽어주는 책 내용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난달 20일 서울 용산구 용암초 1학년 교실. 학생 12명이 교사가 읽어주는 책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온갖 똥 덩이가 김 부자 위로 쏟아집니다”라는 대목이 나오자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칠판 앞에 서 있는 교사, 일렬로 배치된 책상에 앉아 있는 학생을 떠올리기 쉽지만 용암초 1학년 교실의 수업 풍경은 달랐다. 교사는 교실 오른편에 있는 천장 높이 집 모양의 구조물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었다. 학생들은 구조물 안에 설치돼 있는 무릎 높이의 무대나 바닥에 앉아 교사를 바라봤다.

교사가 책 읽기를 끝내자 학생들은 무대에 앉아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고, 교실 뒤편 매트 위나 바닥에 앉아 블록쌓기 놀이를 했다. 무릎을 굽히고 앉은 학생, 양반다리를 한 학생 등 자세가 제각각이었다. 책상에 앉는 학생은 없었다. 바닥에선 온기가 느껴졌다. 학생들은 실내화가 아닌 양말만 신고 있었다. 교실 바닥에 온돌이 설치돼 있어 가능한 일이다.

1학년 유지원 양은 “교실 분위기가 집 같아서 마음이 편하다”며 “바닥에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어 책 읽기가 더 좋아졌다”고 말했다. 발레 수업 역시 강당으로 이동하지 않고 책상을 교실 왼편으로 밀어낸 뒤 교실 안에서 진행했다.

용암초 1학년 교실은 ‘꿈을 담은 교실’로 불린다. 이 교실은 획일화된 기존의 학교 공간을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는 서울시교육청의 사업으로 재탄생했다. 올해 서울시가 35억 원, 시교육청이 18억여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교실 한 곳당 평균 5000만 원을 지원해 20개 초등학교가 1, 2학년 교실을 중심으로 바꿨다.

꿈을 담은 교실의 실내 디자인은 학교마다 다르다. 20명의 건축가가 각자 학교 한 곳씩 맡아 진행했다. 건축가들은 설계 단계에 자신이 담당하는 학교의 학생과 교사의 의견을 충분히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천장에 환기설비를 설치한 학교가 있는가 하면, 교사의 책상을 칠판 앞이 아닌 복도 쪽 창 옆으로 옮긴 곳도 있다. 학생들은 복도 쪽 창을 향해 앉아 ‘교실 앞 칠판, 교실 뒤 게시판’이라는 위계를 없앤 것이다. 바퀴를 단 수납함을 만들어 의자로 활용하거나 네다섯 개를 모아 붙이면 단상으로 쓸 수 있게 한 학교도 있다.

용암초에 집 모양의 구조물이 있다면 서울 마포구 한서초에선 벌집 모양의 구조물을 만날 수 있다. 교실 오른편 벽면에 있는 벌집 구조물의 일부는 수납함과 작품 전시대로 쓰인다. 벌집 아랫부분에는 학생 두 명이 들어가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교실 뒤편엔 매트와 함께 별도 조명이 설치돼 있다. 벽에는 학생들의 미술작품을 비롯해 수업활동 결과물들이 붙어 있었다. 이 학교 2학년 송윤서 양은 “작품들을 붙여 놓고 불을 켜면 꼭 박물관에서 그림을 보는 거 같다”며 “내가 그린 그림이 더 자랑스럽게 느껴진다”라고 말했다.

꿈을 담은 교실 사업에 참여한 건축가들은 1, 2학년 학생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올 수 있도록 공간을 꾸몄다고 한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다가 처음 학교를 경험하는 저학년 학생들에게 학교 공간은 경직된 느낌을 줄 수 있어서다.

서울 동대문구 동답초에 꿈을 담은 교실을 디자인한 김정임 건축가는 “지금은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면서 배우는 시대인데 학교 교실은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주된 사용자가 어린 학생들이고, 교육이 이뤄지는 공간인 만큼 건축가들은 교육학 논문과 외국 사례를 공부했다.

꿈을 담은 교실 교사들은 “교실 공간이 바뀌면서 교육 효과가 극대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문성초 2학년 김인원 교사는 “1, 2학년 수업에는 놀이 활동이 많은데 예전 교실보다 이동이 자유로워 아이들이 더 활발하게 참여한다”며 “일부 학생들은 ‘일주일이 월화수목금금금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공립 초등학교는 올해 기준 총 560개로, 이 가운데 1, 2학년 교실은 5636개다. 이 중 1.7%인 96학급만 꿈을 담은 교실이 됐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산을 좀 더 확보해 내년에는 꿈을 담은 교실 사업에 101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라며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고교에도 다양한 공간을 만들려 한다”라고 말했다.

김하경 기자 whatsup@donga.com
#꿈을 담은 교실#서울 용암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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