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最古 호서문학회, 두살 더 먹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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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 1951년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1949년 ‘호서학보’서 광고 발견
“광복 직후 대전 문학계 활동 활발”

대전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서문학 소개전’. 호서학보와 호서문학, 호서문학회 등을 통해 대전문학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전시회로 10월 말까지 열린다. 대전문학관 제공
대전문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호서문학 소개전’. 호서학보와 호서문학, 호서문학회 등을 통해 대전문학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전시회로 10월 말까지 열린다. 대전문학관 제공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합문학 단체인 대전의 ‘호서문학회’가 알려진 것보다 최소 2년 앞선 1949년부터 활동한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지역 문학계는 광복 직후 대전의 문학계가 활발히 활동했다는 점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라며 보다 세심한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대전문학관은 1949년 12월분 ‘호서학보’에서 호서문학회를 소개하는 광고를 최근 발견했다고 10일 밝혔다. 박헌오 초대 대전문학관장이 발견한 이 박스형 광고에는 호서문학회 주소와 전화번호가 간단히 적혀 있다.

최근 호서문학회의 광고가 실린 호서학보.
최근 호서문학회의 광고가 실린 호서학보.
이 발견으로 문학계는 호서문학회가 최소한 1949년 이미 활동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호서문학회는 전쟁 중인 1951년 11월 ‘머들령의 시인’으로 알려진 정훈 시인을 중심으로 회원 50여 명이 지금의 대전NC백화점 자리인 당시 미국공보원 강당에서 창립했다. 이듬해인 1952년 현존하는 국내 최고(最古)의 종합문예지로 기록된 ‘호서문학’ 창간호를 펴냈다. 이에 따라 호서문학회의 활동 시기는 1951년부터로 알려져 왔다.

2014년 ‘1950년대 전반 대전문학 연구―호서문학 창간호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냈던 세명대 김현정 교수는 “대전에서는 1945년 ‘향토’, 1946년 ‘동백’ 등의 문예지가 창간됐었다”며 “이번 호서학보 광고 발견으로 호서문학회 활동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광복 직후 대전 문학계의 활동이 매우 활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번 발견으로 대전 동구 원동 옛 동구청사 자리에 있던 호서민중대학이 호서문학회의 활동 배경이 됐다는 점도 새롭게 추론할 수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호서학보가 호서민중대학 학보였던 데다 광고의 호서문학회 주소가 호서민중대학과 일치하고 정훈 시인은 당시 이 대학 학장이었다”며 “광고는 아마도 문학회에서 같이 활동할 사람들을 모으려는 목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호서문학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호서문학 창간호는 당시 대전의 인쇄기술과 출판현황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다. 6·25전쟁 당시 월남한 아동문학가 강소천의 시 ‘소라’가 수록돼 있어 대전의 작가와 대전에 피란 온 작가들의 교류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강태근 대전문학관장은 “대전문학관이 소장한 중요 문학자료를 근대문화재로 신청하는 등 대전문학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노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대전문학관은 관내 전시실에서 기획전시 ‘호서문학 소개전―여기와 거기, 기록의 결’을 지난달 중순 시작해 10월 31일까지 연다. 문의 042-626-5021(대전문학관)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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