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국제연극제’ 30년만에 둘로 쪼개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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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제 총괄 이종일 회장 못믿겠다”… 거창군, 7월 별도로 연극제 개최
‘한 지붕 두 연극제’ 우려 현실로

거창문화재단이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GIFT)’의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는 여배우 3명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못쓰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거창문화재단이 ‘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GIFT)’의 홍보를 위해 만든 포스터는 여배우 3명이 불참을 결정하면서 못쓰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아시아의 아비뇽’을 표방하며 국내 굴지의 연극축제로 자리매김한 ‘거창국제연극제’가 두 동강으로 쪼개질 위기에 놓였다. 30년 전 이 연극제를 만들어 키운 연극인 이종일 씨(63)와 10여 년간 연극제를 후원한 경남 거창군의 갈등 때문이다. 예술인들이 중재에 나섰지만 양측의 불신과 견해차가 커 개막 한 달을 남겨 놓고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거창국제연극제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사단법인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회장 이종일)는 다음 달 28일부터 8월 5일까지 위천면 모동리 거창연극학교 토성극장, 장미극장을 비롯해 거창읍 일원에서 ‘제29회 거창국제연극제(KIFT)’를 연다. 지난해까지는 국민 관광지로 이름난 위천면 수승대에서 열었지만 올해는 거창군에 밀렸다.

반면 거창군은 같은 날인 다음 달 28일부터 8월 13일까지 수승대에서 ‘2017 거창한(韓) 거창국제연극제(GIFT)’를 연다. 군이 1월 설립한 거창문화재단(이사장 양동인 군수)이 주관한다. 거창군이 연극제를 주최하는 것은 처음이다. 예산 8억 원을 들여 국내외 50개 팀을 초청해 공연과 경연을 벌일 예정이다.

인구 6만3000명인 군에서 국제연극제 두 개가 동시에 열리며 경쟁하는, 자칫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될 수도 있게 된 셈이다.

이 같은 ‘한 지붕 두 연극제’ 상황까지 처한 것은 진흥회와 거창군 사이에 연극제 운영을 두고 쌓인 갈등과 불신이 주요 원인이라는 게 중론이다.

서울에서 활동하는 연극인 이종열(60) 씨는 21일 “이번 파행은 진흥회가 관(官)의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창군이 별도 행사를 만들어 생긴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거창국제연극제를 민간인(예술인)에게 돌려주지 않으면 거창군의 연극제를 표절이라고 선언하겠다”고 밝혔다. 진흥회 측은 “오랫동안 가꿔온 국제적 문화행사를 관에서 차지하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동일 연극제 명칭 사용을 금지해달라’는 소송도 냈다.

반면 거창군은 연극제를 총괄하는 진흥회가 해마다 수억 원의 군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회계를 비롯한 투명성이 떨어져 더 이상 맡길 수 없다고 반박한다. 2015년 거창군의회는 “2016년부터 거창군이 예산을 집행하라”는 조건으로 연극제 예산 8억 원을 승인했다. 결국 지난해 연극제를 누가 주관하느냐를 놓고 갈등을 벌이다 진흥회가 맡았다. 하지만 예산 지원이 없어 연극제 규모는 축소됐다. 거창군은 “연극제가 개인이나 일부 예술인만의 것은 아니다. 이제 모두의 자산으로 한 단계 더 성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극인들은 일단 수습에 애쓰고 있다. 거창국제연극제 조직위원장을 지낸 배우 최종원 씨와 김삼일 대경대 석좌교수를 비롯한 연극인들은 27일 서울에서 ‘거창국제연극제를 지키기 위한 전국 연극인 모임’을 결성한다. 진흥회와 거창군 사이를 중재해 파국을 막고 단일 연극제를 꾸린다는 구상이다. 올해 두 연극제가 치러지면 갈등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최근엔 GIFT에 초청받은 박정자, 손숙, 윤석화 씨를 비롯한 유명 연극인들이 “‘하나의 연극제’가 아니면 연극계의 문화정의를 위해 불참한다”는 의사를 밝혀 전기(轉機)가 마련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낳았다.

현재로서는 어느 한쪽이 양보하지 않는 한 세계 유수의 연극제와 교류하며 거창의 문화 브랜드로 자리 잡은 거창국제연극제는 큰 흠집이 날 확률이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거창국제연극제#아시아의 아비뇽#거창한 거창국제연극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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