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정수기 소비자 ‘중금속 검사업체’로 몰리지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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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기 안전규정 ‘구멍’]니켈 유해기준 모호해 불안만 커져
섭취량-질환 연관성 분석 제각각

대전에서 정보기술(IT)업체에 다니는 김모 씨(48)는 최근 집에서 사용해온 얼음정수기와 같은 정수기에서 니켈 성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평소 얼음을 병에 가득 채워 다니며 틈날 때마다 먹었던 가족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집 근처 병원에서 혈액 검사를 받아 ‘니켈 수치가 평균 이하’라는 검사 결과를 받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하다.

1일 소비자 단체와 업계에 따르면 김 씨처럼 이번에 문제가 된 정수기를 사용한 뒤 검사 업체나 병원에서 중금속 중독 여부를 검사받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크게 모발, 혈액, 소변으로 나누어 하는 검사는 회당 비용이 많게는 15만 원에 이른다. 지난달 말 코웨이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1500여 명 중 상당수는 이미 검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큰돈이 들어가는 검사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엔 물을 통해 섭취한 니켈의 체내 함량을 분석하는 표준화된 방법이나 기준이 아직 미비하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하루 8시간 작업을 마친 뒤 소변 1L에서 검출되는 니켈이 80μg(마이크로그램·1μg은 100만분의 1g) 이하여야 한다는 고용노동부 기준은 있지만 이는 생활 속에서 노출된 니켈의 기준과는 다르다.

일각에선 중금속 검사 업체만 ‘호재’를 만났다는 얘기도 나온다. 일부 검사 업체는 홈페이지에 얼음정수기 사건을 알리는 팝업창을 띄운 채 손님을 모으거나 ‘코웨이 피해자 모임’ 카페 회원이라고 밝히면 할인가를 적용해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니켈의 모발 검출량이 kg당 0.1mg 이상이면 위험하다’고 홍보하는 업체도 있지만 이 또한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이는 코웨이와 정부가 니켈과 관련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서 빚어진 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코웨이 측은 사건이 불거지자 “문제가 된 모델에선 물 1L에 니켈이 0.025∼0.05mg 검출됐기 때문에 미국 환경보호청(EPA) 기준(0.5mg)보다 낮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 단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니켈 기준은 L당 0.07mg인데 코웨이가 덜 엄격한 EPA 기준만 공개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한 대학병원의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업체는 자체 조사한 니켈 검출량을 상세히 밝히고, 정부는 중금속의 유해성 여부를 정확히 알려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신다은 인턴기자 연세대 국제학부 4학년
#얼음정수기#중금속#니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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