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김은경]삼성직업병 피해보상 문제 사과와 대화로 마무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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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에서 일하다 퇴직하고 그로부터 9년 후인 2005년 백혈병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때 제 첫째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 둘째 딸이 겨우 네 살이었습니다.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만이라도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 딸아이가 올해 중학교 3학년이 됐습니다. 아이들이 예쁘게 잘 자라는 걸 볼 수 있어 감사했고, 백혈병과의 싸움을 잘 견뎌낸 저 자신도 대견스러웠습니다. 삼성직업병 문제도 잘 해결되면서 아이들을 키우는 일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올해 1월 14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권오현 대표이사를 만나 위로 말씀을 듣고 사과문도 전달받았습니다. 25년 전 바로 그날은 온양사업장에 입사한 날이었기에 감회가 깊었습니다.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는 삼성전자에서 일하다 큰 병에 걸린 당사자 또는 그 가족들로 구성된 단체입니다. 오랫동안 삼성과 싸워 온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화해할 수 있었을까요. 그 계기는 권 대표이사의 사과였습니다. 삼성의 태도는 그 이후 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에 힘입어 가족대책위는 조정위원회를 제안하고 권고안을 마련했습니다. 보상 기준이 조정권고안보다 더 높게 책정되고 더 많은 사람을 포함할 수 있도록 한 가족대책위 측 요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물론 100%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삼성전자의 진정성을 믿었기에 하나씩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7년 넘게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에서 함께 활동하며 지켜봤습니다. 제보자 명단은 전화만 한 통 받아도 한 명 추가, 건너 건너 발병한 사람이 있다더라 하면 또 한 명 추가되는 식으로 작성됐습니다. 가족대책위도 보상 신청 접수를 도왔고, 피해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함께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반올림은 여전히 변화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사실 반올림에서는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사람의 말이, 딸이 고통받고 아파하는 것을 묵묵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아버지의 말이, 삶의 기둥이었던 남편을 먼저 보낸 아내의 말이,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낸 남편의 말이 무시당하고 허공의 메아리가 돼야 했습니다. 그것도 부족했는지 어떻게든 이 문제를 풀어보려는 저희에게 반올림 활동가들은 “그럴 거면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반올림에서 쫓겨나 만든 단체가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입니다.

반올림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200일 넘게 농성을 벌이는 것이 피해자들에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그럴 시간이 있으면 한 명이라도 더 피해자를 찾아가 위로하는 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이 아닐까요. 반올림 활동가에게 “어떤 보상 계획이 있느냐”고 묻자 “그냥 계속 싸우겠다”는 말만 했습니다. 하지만 싸우는 것만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아닐 겁니다.

곧 직업병 예방을 담당할 독립적인 옴부즈맨위원회가 출범해 활동을 시작합니다. 보상과 사과에 이어 예방 문제도 잘 마무리되기를 바랍니다.

김은경 삼성직업병 가족대책위원
#삼성전자#온양사업장#백혈병 진단#삼성직업병#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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