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결혼 안해, 내가 냈던 축의금 돌려줘” 비혼족의 선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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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포 세대’ 청춘들 씁쓸한 세태

한 웨딩 사진업체의 싱글웨딩 상품 홍보사진. 채경스튜디오 제공
한 웨딩 사진업체의 싱글웨딩 상품 홍보사진. 채경스튜디오 제공
“난 결혼 안 하기로 했어. 내가 줬던 축의금은 돌려줘.”

부산에 사는 최아름 씨(33·여)는 지난달 초 친구들과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비혼(非婚)선언’을 했다. “앞으로 결혼하지 않을 계획”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비혼은 ‘아직 결혼하지 못했다’는 뜻의 미혼(未婚)과 달리 결혼할 생각이 없으며, 결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강조한 표현이다.

결혼식에서 5만 원씩 축의금을 낸 친구들은 돌려받기 미안해 그냥 뒀지만 10만 원 이상 축의금을 낸 친구들한테서는 따로 연락해 축의금도 돌려받았다. 최 씨는 “축의금은 결혼 비용을 품앗이하는 의미니까 결혼하지 않으면 돌려받는 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처음에는 황당해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내가 진지하다는 걸 확인한 뒤에는 대부분 잘 이해해줬다”라고 말했다.

봄 결혼 시즌이 다가왔지만 청첩장을 보내는 대신 결혼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젊은이들이 나타나고 있다.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다는 ‘3포 세대’가 낳은 새로운 풍속도다.

최근 인터넷 게시판에는 “10년간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면 친구들이 축의금 대신 ‘위로금’을 걷어주기로 했다”는 글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는 것도 결혼하기로 한 것처럼 개인의 선택일 뿐인데 장기간에 걸쳐 축의금으로 지출한 많은 금액을 전혀 돌려받지 못하는 기존의 축의금 문화는 불합리하다는 청년층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다.

‘비혼 세태’를 반영해 결혼 계획이 없지만 웨딩드레스를 입은 사진은 찍어두고 싶은 미혼 여성을 상대로 남자 친구 없이 ‘싱글 웨딩 촬영’을 해 주는 업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싱글 웨딩 촬영에 드는 비용은 60만∼100만 원이다. 일부 여성은 홀로 제주도까지 찾아 웨딩 촬영을 하기도 한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웨딩사진 전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김지선 대표(39)는 “혼자 웨딩 촬영을 하겠다는 예약이 곧잘 들어온다. 결혼 계획이 없는 여성들이 한 살이라도 어리고 예쁠 때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남자 대신 반려동물과 함께 촬영을 하겠다는 여성도 있다”고 말했다.

비혼 문화의 정착을 돕는다는 단체도 있다. 여성주의단체 ‘언니네트워크’는 비혼여성축제를 개최하고 비혼식을 연다. 비혼식에 참석한 여성들은 웨딩드레스에 대항하는 의미로 자주색 드레스를 입기도 하고 정장을 차려입기도 한다. 이들은 “우리는 비혼으로 홀로 잘살겠노라고 신성하게 선언합니다”라고 외친다. 이 단체는 2014년에 비혼 여성과 1인 가구를 위한 가이드북을 제작해 공공도서관에 배포하기도 했다. 가이드북에는 혼자 집을 구할 때 유의할 점이나 비혼자에 대한 사회 시선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등의 내용을 담았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은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인식을 이미 공유하고 있다”며 “여기에 청년 취업난이 극심한 상황 등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젊은이들이 자발적으로 결혼을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혜령 herstory@donga.com·손가인 기자
#비혼족#축의금#3포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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