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구체적이지 않은 네 꿈, 어떡할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3일 03시 00분


코멘트

대입 ‘꿈 찾기 전쟁’…꿈 찾아주는 사주업체도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는 것이 대입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꿈 찾기 전쟁’ 중이다. 사진은 학생의 사주와 진로적성검사를 토대로 학생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아준다고 밝힌 서울 양천구의 한 사주업체 원장이 진로상담을 하는 모습.
일찌감치 진로를 정하는 것이 대입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고교생과 학부모들은 ‘꿈 찾기 전쟁’ 중이다. 사진은 학생의 사주와 진로적성검사를 토대로 학생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아준다고 밝힌 서울 양천구의 한 사주업체 원장이 진로상담을 하는 모습.
\
“꿈이 구체적이지 않다. 네 꿈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경기의 예비 고2 최모 양이 최근 담임교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아직 명확한 꿈을 정하지 못한 최 양이 학생부 기재용 진로희망사항을 ‘사회과학계열’로 써서 제출하자 이에 대한 지적을 받은 것.

최 양은 부랴부랴 ‘꿈 찾기’에 나섰다. 대학 선배들의 합격수기, 유명인사 인터뷰 기사 등을 통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꿈을 정했는지 살펴봤다. 지난 1년간 자신이 경험했던 모든 비교과 활동 내역을 돌이켜보면서 대학 진학에 유리한 꿈이 무엇인지도 생각해봤다.

이런 과정을 거쳐 최 양이 정한 꿈은 ‘사회복지사’. 지난 겨울방학에 사회적 기업인 ‘아름다운 가게’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경험이 단서가 됐다.

최 양은 “관련 활동 경험이 있고 내가 희망하는 사회과학계열에 속해있어 일단 사회복지사로 꿈을 정했지만 급하게 꿈을 정하다 보니 또 바뀔 수도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짜 맞추기식’ 꿈 만드는 고교생들

꿈을 강요받는 시대다. 이런 현상은 일찌감치 명확한 진로를 정한 뒤 해당 진로와 관련된 비교과 활동을 하는 것이 대입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작됐다. 학부모와 교사들은 이를 유도하기 위해 고교생들에게 ‘구체적인 꿈’을 갖기를 요구한다.

문제는 자신이 진정으로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탐색해보지 못한 고교생 중 다수가 막연히 해온 자신의 비교과 활동 내역을 통해 대입에 유리할 만한 꿈을 ‘짜 맞추기식’으로 정한다는 점.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뒤늦게 찾은 고교생들은 “애초에 정했던 꿈에 맞춰 해왔던 비교과 활동들이 소용이 없어졌다”며 고교생활에 회의를 느끼기도 한다.

전남의 예비 고3 조모 양의 꿈은 고1 때까지 ‘변호사’였다. 부모와 친척들의 권유에 따른 것. 고1 때 교내 ‘인권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다채로운 경험을 했지만, 2학년 때 교대 입시설명회 참가, 아동센터 봉사활동 등을 계기로 꿈은 ‘초등교사’로 바뀌었다.

조 양은 “선생님이 “꿈이 바뀔 경우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꿈이 바뀐 계기가 작위적이진 않을지 걱정이 된다”면서 “고1 때 했던 인권 동아리 활동과 초등교사란 꿈을 연결시키는 것이 억지스럽게 생각돼 동아리 활동 내역은 자기소개서에 아예 쓰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사주’와 ‘명상’ 통해 꿈 찾기도

서울의 한 고교 2학년 담임교사는 “요즘 꿈이 없는 학생들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대학 가려면 꿈을 확실히 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면 ‘대입용 꿈’이라도 만들어야 하는 상황.

이런 가운데 꿈이 없는 자녀를 데리고 ‘꿈을 찾아주겠다’는 업체의 문을 두드리는 학부모도 생겨난다.

사주를 보고 학생에게 꼭 맞는 직업을 찾아준다는 서울 양천구의 한 학생사주전문업체. 이곳 원장 A 씨는 “최근 1년간 찾아온 학부모만 수백 명”이라면서 “일반 사주와 달리, 직접 개발한 진로적성 검사를 바탕으로 학생의 성향을 파악하고 사주로 어떤 직업이 학생과 맞는지를 판단한 뒤 구체적이고도 유망한 직종을 안내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의 한 컴퓨터분야 특성화고에 재학 중인 고3 남학생의 사주를 본 A 씨는 “학생은 공무원을 꿈꾸지만 공무원이 되어도 40대 이후에 그만둘 가능성이 높다”면서 “20대에 경력을 쌓은 뒤 30대에 창업을 하면 중년에 큰 재물이 들어올 사주다. 졸업한 뒤 곧바로 취업해 ‘빅데이터 전문가’의 길을 걷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인천 연수구에 있는 한 교육업체는 ‘명상’을 활용해 꿈을 찾아준다고 밝힌다. 원장 B 씨는 “학생들은 명상으로 자신의 내면과 마주하면서 현재의 꿈이 학부모 등 외부의 자극을 받아 생긴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한다”면서 “이후 상담과 진로적성검사 등을 거쳐 진정으로 원하는 꿈을 정하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자질을 갖추려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를 살펴본다”고 말했다.

명확하지 않은 꿈? “평가 불이익 없어”

구체적인 꿈을 정해야만 대입에서 유리할까. 주요대학 입학사정관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학생부 진로희망사항이 반드시 직업으로 한정될 필요는 없고, 고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에 이르기까지 꿈이 일관될 필요도 없을뿐더러, 꿈이 바뀐 계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다.

서울 주요대학의 한 선임입학사정관은 “진로희망사항에 ‘사회과학계열’ ‘공학계열’ 등 분야만 써도 불이익은 없다”면서 “심지어 3년 내내 ‘생명과학자’라는 꿈을 갖고 있던 학생이 화학공학과에 지원해도 문제없다. 평가관들은 꿈이 바뀐 이유에 대해 면접이나 자기소개서를 통해 엿보려하지만 높은 수준의 논리적 근거를 요구하진 않는다”고 전했다.

비교과 활동 내역도 마찬가지다. 꿈과 직결되는 활동만 유의미한 것은 아니다. 특정 학과의 경우 해당 학과와 직결되는 활동을 고교에서 할 수 없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서울 주요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음악 밴드동아리에서 활동한 학생이 수학과에 지원해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고교생활 전체를 진로탐색의 기회로 활용한 학생은 처음부터 명확한 진로를 정하고 활동을 설계한 학생보다 더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김재성 기자 kimjs6@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