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가 고기 있네∼’ 아재, 웃기네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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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유해진(왼쪽 사진)과 요리사 오세득 씨가 방송에서 ‘조기 축구’, ‘어묵’ 등을 소재로 ‘아재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tvN·MBC TV 화면 캡처
배우 유해진(왼쪽 사진)과 요리사 오세득 씨가 방송에서 ‘조기 축구’, ‘어묵’ 등을 소재로 ‘아재개그’를 선보이고 있다. tvN·MBC TV 화면 캡처
“치앙마이, 치안(治安) 마이(많이) 좋다던데∼.”

지난해 말 대기업에서 인턴을 마친 대학생 윤모 씨(26)는 송별회 술자리에서 “방학 때 태국 치앙마이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담당 부장에게 말했다가 이런 대답을 듣고 ‘빵’ 터졌다. 경북 출신 40대 부장이 던진 ‘아재 개그’에 분위기는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윤 씨는 “젊은 세대들과 소통하려는 노력이 긍정적으로 보였다”며 “조금은 썰렁했지만 우리도 10년 뒤에 똑같이 저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나쁘게 보기는 어렵더라”며 웃었다.

아재(아저씨를 친근하게 부르는 말)가 새로운 유머 코드로 떠올랐다. 기성세대를 ‘꼰대’라고 부르며 경멸하던 청년 세대들이 최근 기성세대의 독특한 말투나 구식 유머에 호응해 아재 개그로 통칭하며 친근한 문화 트렌드로 만들고 있다. 고깃집에서 회식을 하며 “회식이 아니라 ‘고기식’”이라고 말하거나, “이가 잘 보이는 연예인은?”이라고 문제를 낸 뒤 “이보영”이라고 답하는 식이다.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이 “회를 먹으니까 진짜 회식이네”라고 한 ‘썰렁 개그’도 이 부류다.

아재 개그의 유행에는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젊은 세대들과의 격차를 줄이고 싶은 기성세대의 ‘웃픈(웃기면서 슬픈) 몸부림’이 한몫하고 있다. 직장인 김용남 씨(55·서울 도봉구)는 “신경 써서 한 농담에 젊은 친구들이 웃어주면 ‘아직 뒤처지지는 않는구나’라는 생각에 뿌듯하다”며 웃었다.

‘응답하라 1988’ 같은 복고 드라마가 유행하고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배우 유해진, 요리사 오세득 등 중년 출연진이 ‘난센스 개그(언어유희적 유치 개그)’를 선보이는 것도 아재 개그를 부추긴다. 주부 변옥경 씨(53·서울 성북구)는 “우리 나이대가 좋아하던 유머를 젊은 세대들도 재미있게 보니 세대 간에 공감대가 맞닿은 것 같다”고 말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씨는 “아재 개그의 내용 자체는 ‘노잼(재미없음)’”이라면서도 “촌스러움이나 황당함 같은 단점을 오히려 ‘웃음코드’로 승화하면서 젊은층에게도 인기를 끌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재 개그를 향한 젊은 세대의 호응에는 고군분투하는 ‘아저씨들’의 애처로움에 대한 격려도 담겨 있다. 직장인 서지수 씨(26·경기 성남시)는 “고기가 고기(거기) 있네∼” 같은 썰렁한 언어유희를 수시로 하는 상사에 대해 “어린 후배들에게 맞추려는 것인데 우리가 이해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제조업체 직원 이형균 씨(31·서울 종로구)는 “우리 상사는 후배들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 경직돼 있어 오히려 안쓰럽다”며 “회식 자리에서 썰렁한 개그라도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미없어도 ‘웃어줘야’ 하는 젊은 세대에게는 아재 개그 역시 강요로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취업준비생인 이진모 씨(32)는 “아재 개그도 젊은이들이 호응해야 재밌는 것이다. 맥락도 모르고 자주 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진다”고 말했다. 이나미심리분석연구원 이나미 원장은 “중년층이 세대 격차를 줄이고 싶다면 젊은 세대들이 농담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분위기부터 만들어 주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유해진#아재#송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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