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경남]“미국 방문중 초면인 美보좌관 설득, 한국산 컬러TV 덤핑 관세율 낮춰 뿌듯”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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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前부산대 교수 회고

“미국의 무역 제재를 완화시키는 과정에 끼어든 일이 생각나네요.”

박준용 전 부산대 교수(79·사진)는 37년간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지내다 2001년 정년퇴임했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그는 1972년 영국의 엑서터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국제정치학회 상임이사를 지낸 국내 정치학 분야의 석학이다. 박 전 교수는 29일 ‘1984년 자신이 겪은 일’을 동아일보에 처음 공개했다.

“1984년 6월 2일이었죠. 미국 국무부 초청으로 2개월간 미국 전역을 돌며 강연하는 것이 제 임무였지요. 그런데 워싱턴 도착 당일 오후 9시경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를 한 주인공은 주미 한국대사관의 A 공사였다. A 공사는 이날 숙소를 찾아와 다짜고짜 박 전 교수에게 개스턴 시거 미국 대통령안보담당 특별보좌관을 만나 달라고 부탁했다.

사정은 이랬다. 1984년 2월 미국 상무부는 한국 기업이 수출한 컬러TV에 덤핑 판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삼성 금성(현 LG) 대우 등 이른바 ‘가전 3사’의 수출길이 막혔다.

A 공사는 정부 고위급 인사가 수차례 미국 정부의 문을 두드렸지만 효과가 없다며 박 전 교수에게 이 문제를 풀어 달라고 호소했던 것.

박 전 교수는 ‘애국심’ 하나만으로 초면인 보좌관을 만났다. 영어가 유창한 그는 평소 의아해하던 미국 횡단보도에 관한 대화로 분위기를 이끈 뒤 덤핑 관세 문제를 거론했다.

박 전 교수에 따르면 시거 보좌관은 그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마친 뒤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선에 성공했고 같은 해 12월 미국이 한국산 컬러TV의 덤핑 관세율을 15%에서 4%가량 낮추면서 문제가 해결됐다.

박 전 교수는 “보상을 바란 건 아니지만 30년간 단 한마디 언급도 없는 정부와 해당 기업이 참 무심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시거 보좌관이 몇 해 전 숨을 거뒀다는 소식에 이 일화를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A 공사에게 연락을 했지만 그도 모른 체했다.

“누군가를 탓하려는 건 아닙니다. 누가 어떤 자리에 있든 애국심을 가져 달라는 의미로 흥미로운 얘깃거리 하나 풀었을 뿐입니다.”

강성명 기자 sm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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