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가업 계승 ‘100년 장수가게’ 꿈꾸는 학생 늘어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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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성화고 가업승계전형 확대

가업을 잇겠다는 뜻을 밝히며 특성화고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올해 서울 송곡관광고에 가업승계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변주연 양(왼쪽)과 이채영 양이 26일 이 학교 조리실에서 조리실습을 하고 있다. 송곡관광고 제공
가업을 잇겠다는 뜻을 밝히며 특성화고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올해 서울 송곡관광고에 가업승계 특별전형으로 입학한 변주연 양(왼쪽)과 이채영 양이 26일 이 학교 조리실에서 조리실습을 하고 있다. 송곡관광고 제공
“부모님 가업을 이어서 일본이나 독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100년 장수가게를 만들고 싶어요.” “아버지가 하시는 책 표지 디자인 작업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서울 송곡관광고 조리학과 1학년 변주연 양(16)은 특성화고 가업승계전형을 통해 올해 이 학교에 입학했다. 할머니와 부모가 15년 가까이 운영해온 경기 고양시 일산의 숯불구이 고깃집을 이어받은 뒤, 여기에 퓨전요리를 접목해 보겠다는 포부를 펼치기 위해서다. 같은 학교, 학과에 입학한 이채영 양(16)은 아버지가 서울 동대문구에서 13년 동안 운영한 일식집을 물려받기 위해 조리기술을 배우고 있다.

이들은 자영업을 하는 부모를 따라 어릴 때부터 가게에 머무는 시간이 많다 보니 어깨 너머로 부모가 음식 만드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설거지를 거들고 간단한 음식을 해내면서 조리에 관심을 갖게 돼 조리기술을 배울 수 있는 특성화고를 선택하게 됐다.

서울 화곡보건경영고 보건복지경영과 1학년에 재학 중인 방지현 양(16)도 가업을 잇기 위해 특성화고를 선택했다. 앞으로 어머니가 운영하는 해동장애아동통합지원센터에 들어가 일을 할 생각이다. 이 센터는 정신지체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자활교육을 하는 사회적기업. 간호 보건 등의 업무를 배우면 센터에서 장애인들을 돕는 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이 학교를 지원했다.

이들처럼 가업을 잇겠다는 학생이 늘면서 가업승계전형을 운영하는 특성화고도 많아지고 있다. 가업승계전형이란 특성화고 정원의 10∼20% 범위에서 가업을 잇겠다는 의지가 강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특별전형이다. 조리뿐만 아니라 제과, 패션, 디자인, 세무, 관광, 미용, 금속 등 대부분의 특성화고 학과에서 선발한다.

이 특별전형은 2013년 서울시와 경남도교육청이 처음 도입했다. 이후 교육부가 2016학년도 고입전형에서 가업승계전형을 운영할 계획이 있는 지역을 조사했더니,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0곳(서울 부산 인천 광주 충북 충남 전북 전남 경북 경남)에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지역에 위치한 특성화고 수는 256개(전국 총 473개)에 이른다.

최근에는 자영업 소상공인 업종뿐 아니라 전문직이나 프리랜서 업종, 사회적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가업을 이어가려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서울에만 가업승계전형을 통해 입학해 현재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이 270여 명이나 된다.

특성화고 가업승계전형을 선택한 학생들은 부모의 직업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자란 만큼 전공학과에 적응이 빠를뿐더러 적성에도 잘 맞는다고 입을 모았다.

올해 성동글로벌고로 진학해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키우고 있는 고윤서 양(16)은 골프의류 디자인 회사를 운영하는 어머니의 권유로 특성화고를 선택했다. 봉제에서 의류패턴 디자인 등을 실제로 해보는 건 학교에 진학하고 처음 해봤지만, 적성을 찾은 것처럼 집중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고 양은 “디자인을 할 때 집중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피는 못 속인다는 말이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또 예림디자인고 1학년 김정연 양(16)은 책 표지 디자인을 하는 아버지의 직업을 잇기 위해 시각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혼자 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를 돕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부녀 사이에 대화가 부쩍 늘어난 점도 장점으로 꼽았다. 김 양은 “수업을 듣다가 어려운 점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물어볼 수 있고, 실무를 거들면서 숙련도를 금방 쌓을 수 있는 것도 좋다”고 말했다.

부모와 같은 자격증을 따려는 사례도 있다. 대동세무고에 다니는 임범진 군(16)은 회계사인 아버지를 따라 회계법인에서 일하다가 대학에 진학해 회계사 자격증을 딸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가업승계전형이 인기를 끌고 해마다 확대되는 배경에는 경제 불황의 영향도 있다”고 말한다. 대학 졸업 후 취업이 어려워지는 만큼 가업을 잇는 것이 경제적으로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가업승계가 단순한 부의 대물림이 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기업가정신 교육 등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서울시교육청 직업교육담당 관계자는 “올바른 가업승계란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책임의식의 대물림”이라며 “적어도 자신이 직접 직업교육을 선택한 학생들은 부모의 가업에 새로운 활력을 넣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접목할 마인드를 갖춘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임현석 기자 lhs@donga.com
#특성화고#가업승계전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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