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풍납토성은 백제 王城” vs “평범한 城”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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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규명 심포지엄 이견 팽팽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터.  송파구 제공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터. 송파구 제공
서울 한강 남단 천호대교 인근 자전거 도로를 달리다 보면 2.5km에 걸쳐 나지막한 언덕이 줄지어 있다. 이 언덕은 초기 백제시대의 흔적으로 추정되는 풍납토성(사적 제11호)이다. 한강 주변 평평한 땅에 도성을 세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외곽에 5m 높이로 흙을 둘러쌓았다. 축구장 120개 크기의 86만 m²로 국내 토성 가운데 가장 넓다.

○ 왕성인가, 평범한 성인가

풍납토성은 과연 어떤 성일까. 13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풍납토성의 역사적 실체를 규명하기 위한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에 앞서 충남 부여와 공주, 전북 익산의 백제 후기 유적들이 4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덕분에 이날 심포지엄에는 300여 명이 참석할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심포지엄 내내 전문가들은 ‘풍납토성이 왕성(王城)이냐, 아니냐’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박순발 충남대 교수는 풍납토성의 한성백제 왕성론을 지지하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박 교수는 “풍납토성 내부 조사에서 늦어도 2세기 무렵의 낙랑계 유물이 출토된 것을 감안할 때 백제가 국가 단계로 성장하기 이전 마한 백제국의 국읍이었다”며 “백제가 지금의 서울에 있던 한성기의 도성이었다는 데 학계의 인식이 다르지 않다. 보존 가치는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희진 역사문화연구소장은 평범한 유적지에 불과한 풍납토성을 무리하게 백제왕성으로 단정했다며 반박했다. 이 소장은 “풍납토성이 백제 초기 역사를 조명하는 계기가 된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왕궁의 흔적이나 원시적인 건물 터, 왕성의 규모를 감안할 때 ‘풍납토성이 백제의 왕성’이라는 결론을 바로 내리는 일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침수 피해가 불가피한 한강 옆에 왕성을 세운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 개발과 보존 둘러싼 갈등 ‘팽팽’

풍납토성이 처음 발견된 것은 1925년 이 지역에 대홍수가 났을 때다. 그러나 정부나 학계의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다 1961년에야 비로소 복원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흐지부지됐다. 1997년 아파트 재건축 공사 과정에서 백제 한성시기인 3세기 유물과 유적 3만여 점이 출토됐다. 그제야 학계는 이곳이 백제 최초의 왕성인 하남위례성(河南慰禮城)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현재는 이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토대로 발굴과 복원을 진행하고 있다.

풍납토성이 ‘왕성인지, 평범한 성인지’는 학계뿐만 아니라 지역주민에게 더욱 민감한 문제다. 그동안 한성백제의 왕성이었다는 주장이 굳어지면서 주민들은 수십 년간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주비용 문제를 놓고 문화재청,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이날 심포지엄에도 지역주민 200여 명이 참석했다. 학계 연구를 통해 풍납토성의 왕성 여부가 최종 확인된다면 어떤 결과든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조영달 기자 dalsarang@donga.com
#풍납토성#백제#심포지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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