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은 엄마의 恨을 씻어주지 못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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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6세 어린이 황산테러 사망사건, 범인 끝내 못밝히고 영구미제로
대법, 재정신청 기각 결정… ‘살인 공소시효 폐지’ 국회 계류중

10일 오후 대구 동구 자택에서 만난 박정숙 씨(51)의 눈빛은 초점 없이 흔들렸다.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좀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의 얼굴에선 아들의 한을 풀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묻어났다. 박 씨는 1999년 황산테러로 숨진 김태완 군(당시 6세)의 어머니다.

박 씨는 16년간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지난해 7월에는 공소시효 만료를 막기 위해 직접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재정신청은 검사가 사건을 불기소 처분한 데 불복해 법원에 직접 사건을 재판에 넘겨 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그러나 1년의 시간이 지난 끝에 대법원은 재정신청 기각을 최종 확정했다고 10일 밝혔다. 황산테러 사건이 영구미제로 남게 된 것이다.

박 씨는 “법은 피해자가 수긍을 하도록 돕는 최소한의 장치가 아니냐”며 “보상을 해달라는 것도 아닌데 과거에 묻혀 고통 속에 사는 피해자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울먹였다. 이어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법(일명 태완이법)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뭐가 급해서 기각 결정을 내렸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태완이법은 올해 2월 새정치민주연합 서영교 국회의원이 대표 발의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박 씨는 “16년 동안 칼날 위에 사는 듯한 아픔 속에서 유족이 이렇게 호소한 것은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며 “단지 진실을 알고 싶다는 것인데 이렇게 허무하게 팽개칠 줄 몰랐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의원들이 사형제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고 하는데 피의자 인권만 보호하고 피해자의 깊은 상처를 외면하는 나라가 정말 원망스럽다”며 “헌법소원 등 혹시 남은 방법이 있다면 다 해보고 싶다”고 했다.

김 군은 1999년 5월 20일 오전 11시경 동구 효목동의 집 근처에서 누군가가 뿌린 황산을 얼굴에 뒤집어썼다. 전신 3도 화상을 입고 49일간 투병하다 숨졌다. 경찰은 2005년 용의자를 찾지 못한 채 수사본부를 해체했다. 2013년 말 대구 동부경찰서는 유족의 청원에 따라 7개월간 재수사를 벌였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김 군의 부모는 지난해 7월 4일 대구지검에 자신들이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했던 이웃 주민 A 씨를 고소했다. 검찰이 증거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리자 부모는 대구고법에 재정신청을 냈다. 그러나 법원은 “김 군의 진술만으로 A 씨를 범인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수사 결과를 번복할 만한 추가 증거가 제출되지 않았다”며 기각했다. 이에 김 군의 부모는 대법원에 재항고했지만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일을 남기고 정지됐던 공소시효는 이번 결정으로 다시 효력을 회복하면서 결국 만료됐다.

대구=장영훈 jang@donga.com / 조동주 기자
#황산테러#재정신청#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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