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감자끼리 만남 주선… 빚독촉 문자 대신 보내기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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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 변호사’ 행태 어떻기에… 구치소서 변호사회에 “징계해달라” 진정
접견권 악용 여러명 불러내… 대기실에서 오붓한 자리 갖게해
‘국가가 소송비용 보전’ 허점 노리고… 정보공개청구 뒤 재소자와 나눠

“제 동료가 얼마 후면 ‘빵’을 나갑니다. 바람을 쐬고 싶다는데 아는 사람 좀 만날 수 있게 불러주세요.”

3월 중순 A 변호사는 서울구치소 수용자인 박모 씨의 개인적 부탁을 받고 박 씨의 수감 동료인 강모 씨에게 접견을 신청해 변호인 접견실로 불러냈다. 재판 상황을 점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닌 변호사 접견을 기다리는 다른 수용자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변호인 접견실로 들어가기 전 자신의 접견 순서를 기다리는 수용자들을 한곳에 모아두는 대기실이 있다는 점을 이용했다. 변호사 한 명이 동시에 여러 명의 접견을 신청하면 대기실에서 접견 순번을 기다린다는 명분 아래 자유시간을 갖는 식이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강 씨는 같은 수법으로 다른 수용자들과 오붓한 ‘대기실 만남’을 즐겼다.

하지만 강 씨 등의 외유와 A 변호사의 공모는 오래가지 않았다. 서울구치소는 이를 적발해 관련 법규에 따라 박 씨와 강 씨에게 각각 금치(규칙 등을 위반한 수용자를 일정기간 독방에 감금하는 것) 20일, 금치 16일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구치소 측은 위법행위를 도왔다는 이유로 A 변호사를 징계해 달라며 지난달 21일 서울변호사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교정시설 내 규정을 어기고 수용자들의 편의를 봐 준 변호사들에 대해 서울구치소가 “변호사법상 변호사 품위유지 의무 등을 위반했으니 징계해 달라”며 최근 진정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그동안 풍문으로만 돌던 이른바 ‘집사변호사’(수감 중인 의뢰인의 잔심부름을 도맡아 처리하는 변호사를 일컫는 말)의 실체가 드러난 셈이다.

B 변호사는 1월 초 의뢰인의 부탁으로 채무변제 독촉 문자메시지를 5차례 대리 전송한 사실이 적발됐다. 의뢰인의 교도소 동료 윤모 씨가 함께 수감생활을 하다 출소한 사람이 자신에게서 빌려간 돈을 갚지 않자 “돈을 갚으라”고 쓴 편지를 B 변호사가 사진으로 촬영해 출소자 휴대전화로 대신 보낸 것. 이에 출소자가 민원을 제기해 B 변호사 역시 서울구치소의 진정으로 징계개시 신청을 위한 서울변호사회 조사위원회에 회부됐다.

재소자와 짜고 재소자를 대신해 전국 검찰청 등을 상대로 수백 건에 이르는 정보공개 청구 기획소송을 낸 C 변호사도 지난달 초 진정이 접수됐다. 정보공개 소송을 내서 승소하면 국가가 소송비용을 보전해준다는 점을 노리고 재소자와 돈을 나눠 갖기로 한 사실이 재소자의 실토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재 C 변호사는 한 시민단체의 고발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도 받고 있다.

올 2월 새로 꾸려진 93대 서울변호사회 집행부 출범 100일 만에 구치소에서 접수된 변호사 징계 신청 진정은 모두 4건. 이전 집행부에서는 단 한 건도 없었던 집사변호사 징계 요구가 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변호사들 사이에선 “구치소가 얼마나 손쓰기 어려울 정도면 진정을 접수시켰겠느냐”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인사는 “변호사 단체나 개인의 자정 노력만으로는 한계에 부딪친 것 같다”며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이고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
#집사 변호사#징계#수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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