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효과… 초등생 바둑열기 ‘부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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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마다 학부모-학생 발길 늘어

드라마 ‘미생’으로 시작된 바둑 열풍이 최근 초등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집중력과 사고력 향상 등 바둑의 교육효과가 재조명되면서, 수년간 한산했던 동네 기원과 바둑도장에 학부모들의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구로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바둑을 두며 공부하는 모습. 동아일보DB
드라마 ‘미생’으로 시작된 바둑 열풍이 최근 초등생과 학부모 사이에서도 퍼지고 있다. 집중력과 사고력 향상 등 바둑의 교육효과가 재조명되면서, 수년간 한산했던 동네 기원과 바둑도장에 학부모들의 문의전화가 잇따르고 있다. 사진은 서울 구로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바둑을 두며 공부하는 모습. 동아일보DB
《 지난해 드라마 ‘미생’에 푹 빠졌던 송윤진 씨(36)는 최근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바둑학원에 등록시켰다. 송 씨는 “아이가 10분만 책상에 앉아 있어도 몸을 꼬고 금세 일어나 공부방에서 뛰쳐나오기 일쑤”라며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증세가 아닌가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마침 송 씨의 고민을 들은 주변 학부모 중 한 명이 바둑을 권했고, 다니는 학교에도 방과 후 교실에 바둑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송 씨는 아이를 독서반에서 바둑반으로 옮겼다. 송 씨는 “아이가 바둑에 흥미를 붙인 뒤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고 말했다. 》
● 드라마 인기에 ‘뇌 발달’ 효과 재조명

바둑의 교육 효과는 예전부터 실험으로도 증명됐다. 명지대 바둑학과와 서울불교대학원대 뇌과학과 학생들은 2009년 바둑학원에 다니는 학생 20명과 그렇지 않은 학생 20명의 뇌파를 측정하는 실험을 했다. 그 결과 바둑을 배우는 학생들의 뇌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뇌보다 뇌파 활성화 정도가 더 높았다. 바둑을 둘 줄 아는 학생들의 뇌가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뇌보다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는 뜻이다.

명지대 바둑학과에서 초등학교 4학년을 대상으로 실시한 다른 연구에서도 바둑은 학생들의 정서지능, 이른바 ‘EQ’ 발달에 긍정적인 효과를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서지능은 자신의 희로애락 등 감정을 다스리고, 타인의 감정 상태를 파악하거나 공감하는 능력을 말한다.

최근 학부모와 초등생 사이에서 바둑 바람이 다시 불고 있다. 2000년대 시들했던 바둑의 인기가 지난해 드라마 ‘미생’의 흥행을 계기로 다시 인 것. 성인들 사이에서 퍼진 바둑 인기는 최근 학생과 학부모들에게도 퍼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명지대 이세돌 바둑학원’에는 지난해 말과 올 초 사이 학생들의 발길이 부쩍 늘었다. 이 학원 김아람 원장은 “자녀에게 바둑을 가르치고 싶다는 문의가 지난해 초에 비하면 3∼4배는 늘었다”며 “처음에는 아이만 등록시켰다가 나중에는 부모도 같이 등록해 바둑을 배우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이 학원에서는 60여 명의 유치원생, 초중고교생이 바둑을 배우고 있다.

● 6개월 지나면 아이 분위기부터 바뀐다

김 원장은 “바둑을 전혀 둘 줄 모르는 아이가 교육받기 시작하면, 일단 예절부터 배운다”고 설명했다. 아이들은 처음에 바둑판을 앞에 놓고 대국자(상대)에게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천천히 돌을 집어 바둑판에 올려놓는 법을 배운다. 대국 중에는 떠들거나 소란을 피워선 안 되고, 상대의 주의를 방해하는 산만한 행동도 할 수 없다. 김 원장은 “집중력 부족으로 식당이나 지하철에서 소란을 피우기 일쑤이던 아이들도 바둑을 배우고 한두 달 지나면 분위기부터 싹 바뀌곤 한다”고 말했다. 이후 포석, 사활, 전투, 집짓기 등을 배우는 과정에서 자연히 계산력과 집중력도 강해진다.

최근 엄마들 사이에서는 설 연휴 한 TV프로그램에 나왔던 ‘바둑 신동’ 김은지 양(8)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 양은 초등학교 2학년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이 든 바둑 고수들을 연이어 이겼다. 같은 또래의 수학, 과학 영재들과도 문제 풀이 과정에서 결코 밀리지 않으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 프로그램을 본 학부모 이은옥 씨(38)는 “수학, 과학 영재는 어렸을 때 머리가 타고나는 측면이 큰데 바둑은 배워서 스스로 개발하는 측면이 큰 것 같다”며 “공부에 도움이 될 것 같아 아이들에게도 가르쳐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어린 자녀에게 바둑을 가르칠 때는 염두에 둘 점이 있다. 조급해하면 안 된다는 것. 일부 학부모는 아이가 산만한 탓에 바둑학원에 등록해 놓고 1, 2주 만에 아이가 달라지길 기대했다가 좀처럼 바뀌지 않으면 실망하기도 한다. 김 원장은 “바둑을 전혀 둘 줄 모르는 초등생이라고 가정할 때, 최소 6∼8개월은 지나야 혼자 힘으로 한 판을 둘 수 있고, 1년이 지나야 전략적 사고 능력이 생긴다”고 조언했다. 김 원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곰곰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능력이 길러지면서 영어나 수학 등 다른 공부 영역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는 아이가 많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미생#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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