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 끊으려니 감성이 화석화될 것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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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 SNS에 담뱃값 인상 성토 “창작 원자재… 한모금의 기쁨 빼앗아”

‘담배는 문학 작품의 원자재?’

올해 담뱃값이 2000원이나 오르자 상당수 문인이 ‘원자재’ 가격이 올랐다며 뿔을 내고 있다. 그만큼 문단에선 오래전부터 담배를 창작의 ‘필수품’처럼 여겨왔기 때문이다.

근대소설가 김동인(1900∼1951)은 “생각이 막혔을 때에 한 모금의 연초가 막힌 생각을 트게 하는 것은 흡연가가 다 아는 바”라며 ‘연초의 효용’을 강조했다. 2004년 담뱃값이 갑당 500원씩 올랐을 때, 한국문인협회는 “창작 아이디어의 유일한 벗인 담배 가격 인상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성명을 냈을 정도다.

지금의 문인들 역시 고충을 호소한다. ‘차남들의 세계사’를 쓴 소설가 이기호 씨는 원고지 한 장을 쓸 때 담배 1, 2개비를 피우는 애연가다. 그는 “담배를 끊으면 소설을 쓰는 데 필요한 머리, 감성이 화석화될 것 같아 끊을 수 없다”며 “원자재 가격이 올랐으니 앞으로는 많이 피우고 더욱더 많이 쓰겠다”고 말했다.

올해 담뱃값 인상에 반대하는 문인단체의 성명은 발표되지 않았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문인들의 항의가 이어지고 있다. 소설가 박범신 씨는 지난달 6일 트위터에 담배를 빌려 달라는 청년 이야기를 올리며 “차라리 세금 더 걷지 건강 명분으로 빈자들 주머니 털어 불안감 키우는 나라”라고 썼다. 시인 김경주 씨도 같은 날 페이스북에 “간접세를 내고도 죄인 취급 받는 흡연자들에게 개비담배 파는 담배천국이 생긴다면 김밥천국보단 호응 좀 있으려나”라고 올렸다. 시인 김은경 씨는 ‘한국작가회의 통신’에 “담뱃값 4500원이면 서민에게 한 끼 밥값보다 많을 수도 있는 돈이다. 그러니 이제 씁쓸한 세상살이에 담배 한 개비 피워 물 여유조차 우리에겐 쉽게 허락되지 않을 터이다”라고 썼다.

인상에 대한 항의 표시로 금연한 경우도 있다. 문학평론가인 황현산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트위터에 “(금연 후)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오고, 식욕이 떨어지고, 배변 습관이 바뀌고, 눈이 침침한 것만 같고, 모든 것이 엉망이다”라고 글을 올렸다. 그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글 쓰는 사람은 담배 힘으로 글을 쓰지만 우리에게 담배 한 개비만큼의 기쁨도 주지 못하면서 담뱃값을 올린 정부가 괘씸해 끊었다”고 일갈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담배#금연#문인#담뱃값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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