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지기’가 되세요… 미소가 따라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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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1월의 주제는 ‘배려’]<19>공공장소 출입문 잡아주기

뒷사람에게 잠깐 문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배려가 된다. 26일 서울 종로의 한 오피스텔 현관에서 앞서가던 남성이 뒷사람을 위해 문 손잡이를 잡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뒷사람에게 잠깐 문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배려가 된다. 26일 서울 종로의 한 오피스텔 현관에서 앞서가던 남성이 뒷사람을 위해 문 손잡이를 잡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6500명 중 67명. 23일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1시간 동안 서울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역에서 호남선 터미널로 들어가는 무거운 유리문을 얼굴 모르는 뒷사람을 위해 잡아준 사람들이다. 100명당 1명꼴이다.

붐비는 장소일수록, 대형 유리문일수록 출입문을 잡아주는 것은 뒷사람이 다치지 않게 하고 기분도 좋게 만드는 작은 배려다. 2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IFC몰에서 만난 최만성 씨(64)는 “문을 잡아주지 않으면 뒷사람, 특히 어린아이가 다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이날 부인과 함께 걸어가다 뒤에 오는 30대 남성에게 문을 잡아줬고 뒤따라오던 남성은 고맙다며 고개를 숙였다. 같은 날 여의도에서 만난 임숙영 씨(55·여)는 “앞사람이 문을 잡아주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앞사람이 자기만 문을 열고 나가버리면 뒷사람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있다. 직장인 신중민 씨(35)는 “지난해 여름 IFC몰에서 앞사람이 자기만 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바람에 초등학교 1학년 조카가 문에 머리를 맞고 넘어졌다”고 말했다. 정모 씨(45·여)도 앞서가던 20대 남성이 혼자만 열고 나간 문을 잡으려다 팔을 부딪쳤다. 정 씨는 “프랑스에서 오래 생활하다 귀국했는데 문 잡아주는 작은 배려조차 없는 한국이 야속했다”면서 “이제는 나도 문을 안 잡아줄 때가 있다”고 말했다.

문을 잡아줬다가 오히려 불쾌한 경험을 한 사람들도 있다. 뒷사람이 그 다음 사람을 위해 다시 문을 잡아주거나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게 아니라 몸만 빠져나갈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건너와 서울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켈런 씨(35)는 “몇 년 전 쇼핑몰에서 문을 잡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 뒤로 오는 일행 20여 명이 고맙다는 인사도 안 하고 빠져나가 기분이 좋진 않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 씨(45)는 “여성 둘이 당연하다는 듯 자기들끼리 수다 떨며 내겐 눈인사도 없이 지나쳐 그들의 하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런 지적이 적지 않다 보니 온라인에서는 문 잡아주는 배려를 놓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한다. 포털사이트의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천천히 걷고 싶은데 멀리 떨어진 사람이 문을 잡고 기다리면 뛰어가야 해서 불편하다’는 의견이나 ‘냉난방하는 곳이 많은데 문 잡는 시간이 길어지면 비용 낭비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문 잡아주기가 뒷사람을 위한 당연한 배려라고 말한다. 건국대 국제학부 민병철 교수는 “문 잡아주기는 ‘내가 당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걸 가장 쉽게 알려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면서 “앞사람의 배려를 받은 나도 뒷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릴레이 배려’가 자주 눈에 띄면 문 잡아주기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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