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숍서 업무지시 여유도 잠깐… “못받는 전화-메일 없나” 금단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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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독’ 행자부 국장 17명 ‘사무실 밖 재량근무’ 첫날… 이인재 정책관의 하루
“현장이든 산속이든 책상 벗어나라”… 행자장관 지시로 ‘1주일 근무 실험’
서점-영화관 찾아 사고의 틀 깨기… “사무실-문서에 갇혔던 정책 반성”

오전 8시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사무실 출근→오전 8시 20분 지방행정정책관실 국장 주재 과장 주간회의→오전 9시 지방행정실 실장 주재 국장 주간회의….

매주 월요일 오전 행정자치부 이인재 지방행정정책관(53·국장)의 일정이다. 회의와 보고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서 늘 쫓기듯 한 주를 시작했다.

2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이인재 국장이 일정표를 보며 부하 직원과 통화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6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의 한 커피전문점에서 이인재 국장이 일정표를 보며 부하 직원과 통화하고 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26일은 달랐다. 아침을 먹고 9시쯤 느긋하게 집을 나섰다. 30분 뒤 그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근처 커피전문점에 앉아 이번 주 업무 일정을 정리했다. 간간이 직원들의 전화가 걸려올 뿐 회의도 보고도 없었다. 이런 월요일 오전이 가능한 이유는 이날부터 ‘사무실 밖 재량근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앞서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6일 간부회의에서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모든 국장이 업무 현장이든, 산속이든 사무실을 벗어나 원하는 곳에 가서 자신이 올해 무엇을 할지 깊이 고민하고 답을 찾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26∼30일 행자부 소속 국장 17명 전원이 사무실 밖으로 ‘출근’했다. 재량근무는 국가공무원복무규정에 있는 제도이지만 실제론 거의 쓰이지 않는다. 게다가 부처의 국장들이 한꺼번에 재량근무를 한 일은 전례가 없다.

이 국장 역시 27년간 야근과 주말근무가 몸에 밴 ‘워커홀릭’ 공무원이다. 거의 매일 30분 단위로 짜인 일정에 끌려다녔다. 이날 갑자기 눈앞에서 시간표가 사라지자 그는 ‘금단 현상’까지 보였다. 새로운 e메일이 왔는지 보고 또 보고, 사무실 전화를 받지 못하면 난감한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앞으로 일주일간 일정을 수첩에 정리한 뒤에야 어느 정도 안도하는 모습이었다.

“문서에만 갇혀 사고가 딱딱해졌는데 머리를 좀 쉬게 하면서 신선한 아이디어를 얻고 싶네요.” 그는 ‘업무 다르게 보기’를 목표로 정했다. 읽지 못한 책을 읽고, 보지 못한 영화도 한 편 골랐다.

26일 오전 11시 반 서울 강남구 교보문고에서 행정자치부 이인재 지방행정정책관(국장)이 업무 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26일 오전 11시 반 서울 강남구 교보문고에서 행정자치부 이인재 지방행정정책관(국장)이 업무 관련 서적을 읽고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오전 11시 반 강남역 근처 교보문고에 도착했다. 지방자치 관련 책을 찾아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 국장은 “그동안 행정이라는 ‘기술’에 매몰돼 밑바탕이 되는 큰 가치를 잊곤 했다. 매일 하는 업무를 풀뿌리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맥락에서 다시 점검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28일 네이버, 29일 구글코리아와 유한킴벌리를 방문해 민간기업의 문화도 배울 계획이다.

이 국장 외에 김용순 비상안전기획관은 전남 나주 한국농어촌공사, 박병호 조직정책관은 경기 남양주시 고용복지플러스센터, 김일재 인사기획관은 서울 강남구 도곡동 주민센터, 허언욱 지역정책발전관은 강원 춘천시 김유정 문학마을을 방문했다. 국장들은 “‘현장이 중요하다’ ‘현장에 답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막상 현장에 갈 시간이 부족했다”며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재량근무의 성과는 다음 달 간부회의를 통해 공유되고 업무에 반영된다. 행자부는 평가를 거쳐 재량근무 대상을 과장급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 재량근무

정부가 시행 중인 유연근무제 가운데 한 유형.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에 따라 출퇴근 의무 없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면 주 40시간을 근무한 것으로 인정해준다. 개인과 기관이 합의해 수시로 신청할 수 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이인재#지방행정정책관#공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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