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년 뚜벅뚜벅… 학생도 교수도 “타불라 라사”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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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전용 ‘아담스칼리지’ 개설 8년… 미주기구 등 국제기구 진출 활발
창업-산학협력 선도대학 선정 등… 교육-연구 ‘도전적 개척정신’ 성과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명대 성서캠퍼스. 앞쪽에 보이는 아담스채플을 비롯해 도산서원을 본뜬 한학촌, 행소박물관, 아트센터 등 90여 개
 건물이 숲 속에 조화롭게 배치됐다(왼쪽 사진). 계명대 본관에 걸려 있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 액자. 비어 있는 액자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계명대 제공
아름답기로 유명한 계명대 성서캠퍼스. 앞쪽에 보이는 아담스채플을 비롯해 도산서원을 본뜬 한학촌, 행소박물관, 아트센터 등 90여 개 건물이 숲 속에 조화롭게 배치됐다(왼쪽 사진). 계명대 본관에 걸려 있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종이)’ 액자. 비어 있는 액자를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계명대 제공
올해 계명대에서 열린 실크로드 국제학술대회(10월 30, 31일)에 참가한 터키와 아제르바이잔, 우즈베키스탄 등 주한 중앙아시아 국가 대사 등은 “실크로드에 대한 체계적 연구를 계명대가 시작하는 것은 한국의 문화적 역량을 높이는 중요한 계기”라고 입을 모았다. 실크로드중앙아시아연구원 설립에 맞춘 행사였다.

실크로드 전문가로 ‘술탄과 황제’를 저술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이틀 동안 계명대에 머물면서 ‘대구에 이렇게 품위 있는 대학이 있는 줄 몰랐다”며 “아름다운 캠퍼스만큼이나 깊은 인상과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115년 전통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멋이 짧은 시간에도 이 같은 느낌을 안겼다. 계명대는 1899년 미국인 선교사들이 설립한 의료기관 제중원(현 계명대 동산의료원)에서 출발했다.

○ ‘한결같은 성실한 노력’ 계명정신

“겸손한 자세로 하나씩 실력을 쌓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요. 열정과 도전정신은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봅니다.”

계명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지난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대표이사가 된 윤갑한 사장(56)의 말이다. 1984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30년째 근무하는 그에게 현대자동차는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다. 윤 사장은 “성실한 노력은 평범해 보이지만 대학생 때나 직장생활에서 가장 가치 있는 덕목이 아닐까 싶다”며 “동료와 더불어 늘 더 나은 차원을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결같이 정성껏 애쓰는 자세는 당장은 둘러가는 듯하지만 결국 바른 길로 나아가는 정직한 자세라는 뜻이다. 윤 사장의 태도에는 ‘대기만성 노력’을 소중하게 여기는 계명대의 정신이 엿보인다.

‘광고 천재’로 불리는 이제석 이제석광고연구소 대표(32)도 마찬가지다. 계명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뉴욕의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뒤 세계적인 광고 전문가로 활동하는 그도 ‘최선을 다하는 노력’을 이야기했다. 동아일보가 선정하는 ‘10년 뒤 한국을 빛낼 100인’ 가운데 한 명인 이 대표는 22일 “모든 건 결국 실력인데 이는 부단한 노력 이외에는 믿을 게 없다”고 말했다.

○ ‘히든 챔피언’ 꿈꾸는 학생들

깊은 전통에 아름답고 고즈넉한 캠퍼스 분위기 때문인지 학생들(학부 재학생 2만3000여 명)도 차분하게 실력을 쌓으며 꿈을 키우는 스타일이 많다. 아담스칼리지(KAC) 국제관계학과 4학년 박미화 씨(23)는 며칠 전 미주기구(OAS)로부터 인턴십 합격통보를 받았다. 미주기구는 아메리카대륙 35개 국가협의체이다. 외교부의 추천을 받아 인턴십에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는 미주기구에 직접 지원해 최종 합격했다. 박 씨는 “1학년 때부터 미주기구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에 차근차근 준비했다”고 말했다. 2007년 개설한 KAC는 영어 전용 특성화 단과대학으로 학생들의 국제기구 진출이 활발하다.

○ ‘타불라 라사’ 개척정신

계명대 본부 현관에는 ‘타불라 라사’(백지 상태라는 뜻)로 불리는 큰 액자가 ‘우리가 얼굴을 가질 때까지’라는 글씨와 함께 걸려 있다. 도전적 개척정신과 윤리적 봉사정신, 국제적 문화감각, 창의적 전문성 등이 계명대가 추구하는 ‘얼굴’ 즉 정신(얼)의 모습이다. 이 비어있는 액자를 채울 때까지 노력한다는 뜻을 담았다.

세계 최고의 음대인 폴란드 쇼팽음대와 손잡고 설립한 계명쇼팽음악원을 비롯해 교육역량강화사업, 학부교육선진화선도대학(ACE), 산학협력선도대학(LINC), 특성화 5개 사업단, 창업선도대학, 고교교육정상화기여대학 등 정부의 각종 지표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도 타불라 라사 개척정신의 정직한 결과이다.  
▼ “대학 환경 달라졌다고 보편적 가치 변하면 안돼… 인재양성에 모든 정성” ▼

신일희 계명대 총장


신일희 계명대 총장(75·사진)의 집무실에는 ‘啓明正名(계명정명)’이라는 글씨가 있다. ‘계명이라는 말을 바르게 실천한다’는 뜻이다. 신 총장은 “밝은 세상을 여는 대학의 역할을 위해 노력하는지 늘 돌아본다”고 말했다.

계명대는 기독교 정신에 따라 설립됐지만 신 총장은 대학교육의 보편성을 깊이 고민한다. 동양학적 인문정신에 밝은 그는 ‘계’를 ‘문을 활짝 열어 깨우치고 이끈다’로, ‘명’은 ‘해(日)와 달(月)이 어울려 세상을 밝힌다’로 풀이한다.

이름을 바르게 한다는 ‘정명’은 논어에서 공자가 매우 중시하는 말이다. 신 총장은 공자아카데미 중국본부 이사이다.

그는 이 같은 인문적 관점에서 공학은 계명공학, 의학은 계명의학, 예술은 계명예술처럼 생각한다. 단과대학이나 학과에 갇히면 세상을 향한 넓은 시각이 좁아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모든 전공 공부는 사람다움의 무늬, 즉 인문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할 때 완성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그는 “대학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이 이전과는 많이 다르지만 ‘넓고 크고 높은 배움’을 추구하는 대학의 보편적 가치는 대들보처럼 굳건해야 한다”며 “이 같은 가치를 중심으로 대학교육은 반듯한 지도자(리더)를 양성하기 위해 정성을 쏟는 중심을 잃지 않는 게 소중하다”고 말했다.

대구=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계명대#타불라 라사#아담스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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