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착한 소금 만들겠습니다, 도와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염전 노예’ 후폭풍… 신안 염전업자들 자성과 호소

“염전 인권유린 사건,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착한 소금’을 만들도록 도와주세요.”

전남 신안은 일명 ‘염전노예 사건’으로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다. 천일염생산자협회는 인권침해와 1년 이상 근로자 임금을 체불한 염전이 40여 곳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염전은 천일염을 판매한 뒤 임금을 한꺼번에 정산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일부 1년 이상 임금을 체불한 업주는 나쁜 의도를 갖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전남지역 염전이 1025곳임을 감안하면 문제를 유발한 곳은 전체의 4% 수준에 불과하다. 대다수 선량한 천일염 생산자들은 염전 인권유린은 반드시 근절돼야 하고 인력수급 등 생산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 염전 근로자 25%는 장애인

전남은 염전 3033ha에서 한 해 평균 천일염 30만여 t을 생산한다. 전국 소금 생산량의 90% 수준. 전남도가 19일 파악한 염전 종사자는 2424명이며 이 가운데 타 지역 근로자는 219명. 염전 종사자 90%가 부부 등 가족이나 지역 주민들이다. 타 지역 근로자의 수는 시기별로 다르다. 천일염을 생산하지 않는 겨울철에는 200명, 3∼10월 생산시기에는 700∼800명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추측된다. 전남도와 전남지방경찰청은 염전 실태조사를 통해 근로자 4명 중 1명이 장애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등록되지 않은 장애인들은 가족이 없거나 보호자가 있더라도 제대로 보살펴주는 않는 경우가 빈번하다. 세상에서 고립된 일부 장애인들이 염전에서 또다시 인권유린을 당하는 셈이다.

일부 장애인은 월급 통장을 관리할 능력이 없어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염전 노예 사건으로 경찰에 처음 구속된 강모 씨(53)의 염전에서 7년간 임금 8000만 원을 받지 못하고 일한 장애인 박모 씨(53)의 경우 지적수준이 초등학생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주 강 씨는 이런 점을 알고 박 씨 명의의 통장에서 장애인연금 1000만 원까지 가로챘다.

일부 천일염 생산자들은 재발방지책으로 “일용직 근로자들을 고용하거나 장애인은 아예 고용하지 말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 고용금지는 또 다른 차별을 부를 수 있는 상황이다.

○ “착한 소금을 만들자”


일부 염전 업자는 파문이 발생한 뒤 “소금 생산을 그만두겠다”는 입장을 협회에 전했다. 인력을 구하기 힘든 데다 가격마저 생산가를 밑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장기화되면 천일염 생산기반 붕괴와 가격급등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박형기 천일염 생산자협회장은 “11년간 소금을 생산하면서 흑자를 낸 건 4년에 불과하다. 천일염 가격이 생산원가인 kg당 550원 선을 유지해야 양질의 근로자들이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상적인 임금을 주고 생산한 커피를 마시자는 ‘착한커피 운동’처럼 염전 인권유린을 근절하고 소금도 제값을 주는 착한 소금 먹기 운동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김형모 목포대 경제학과 교수는 “kg당 200원대인 소금은 쓰레기 다음으로 싸다는 말이 나온다”며 “신토불이 국내 천일염 생산기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염전직불제 도입, 종사자 훈련기관 설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천일염생산자협회는 26일 국회 세미나에서 염전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방안과 근로자 채용 시 장애인·수배자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여건과 급여 수준에 대해 건의할 계획이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