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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2014 새해 특집]당신의 말, 세상을 바꿉니다

입력 2014-01-01 03:00업데이트 2021-09-0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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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채널A 새해기획
[말이 세상을 바꿉니다]<1>나쁜 말이 평생의 상처로
딱 한마디였다, 그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같은 반 친구가 던진 ‘걸레’라는 말. 그게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 친구는 지현이(가명)가 뒤에서 험담했다는 말을 다른 친구로부터 듣고 화가 났다. 그래서 교실에서 지현이에게 달려가 다짜고짜 소리쳤다. “걸레 같은 ×”이라고.

그 이틀 뒤 둘은 오해를 풀었다. 지현이는 맹세코 험담한 적이 없다고 해명했고 친구도 그 말을 믿고 사과했다.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착각이었다. 둘의 갈등은 풀렸지만 입에서 내뱉은 말은 이미 뿌리를 내린 뒤였다. 지현이란 이름 앞엔 이미 불편한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걸레라는…. 그리고 지현이는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하지 말아야 할 가정을 하게 됐다. 먼지가 되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말이 참 무섭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말 한마디로 생긴 생채기가 평생 흉터로 남기도 한다.

특히 스스로 화를 조절하고 분노를 제어하는 자정 능력이 부족한 열 살 전후 아이들에겐 ‘나쁜 말’이 더욱 무섭다.

그 시기에 나쁜 말로 고통 받는 아이들의 심정은 어떨까. 동아일보 취재팀은 일단 그 아이들 목소리부터 생생하게 들어보기로 했다.

방법으로는 정보기술(IT)업체 레드퀸이 개발한 ‘마스크챗’이란 익명 메신저를 활용했다. 마스크챗은 발신 번호를 지우고도 익명으로 대화가 가능한 신형 메신저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리지 않고도 교사, 전문 상담원, 경찰 등과 실시간으로 얘기를 나눌 수 있다 보니 학생들은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다.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고, 친구의 잘못을 보면 가감 없이 고발했다.

대상은 부산, 울산, 창원의 초등학교 7곳 학생 7305명. 지난해 5월부터 반년 동안 메신저를 가동한 결과 ‘목소리’ 수만 건이 전달됐다. 거기서 상담으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수준은 2337건. 그중 절반이 넘는 51%는 언어폭력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 “걸레!” 열한살 아이가 내뱉은 이 한마디… ▼

초등생들의 ‘언어 폭력’


초등학교 4학년 지현이(가명)도 마스크챗을 통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지난해 7월의 어느 날. 첫 메시지. 짧고 차분했다. “제가 왕따까진 아닌데…. 지금 힘들어요. 그래도 아직은 참을 만하지만.”

답장을 보내 물어봤다. 왜 힘이 드느냐고.

더이상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열흘 뒤. 다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같은 아이, 지현이의 메시지였다. 그 심정이 얼마나 억울하고 참담한지. 분노는 메시지에 그대로 묻어났다. “하늘이 회색으로 보여요. 오늘은 길을 가다 벽돌을 들었어요. 그냥 던져 버리고 싶은 생각에… 다 없애 버리고 싶어요.”

그리고 또 5일 뒤. 메시지는 다시 고요해졌다. 그런데 더 위험해 보였다. 바깥으로 조준됐던 분노의 화살은 좌절의 시한폭탄이 돼 자신을 향해 있었다. “아침마다 생각해요. 내가 먼지가 돼 버렸으면 좋겠다고. 근데 내가 없어지면… 그대로 사라지면 엄마가 아프시겠죠?”

언어폭력에 시달린다고 고백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분석했더니 첫 번째로 ‘지속성’이란 키워드가 뽑혔다. 누군가의 나쁜 말로 시작된 공격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수년에 걸쳐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관심종자’란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는 초등학교 2학년 A 군.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친한 친구들조차 그 별명으로 놀려대기 시작했을 때쯤엔 상황이 심각해졌다. 말수가 없어지고 이유 없는 손 떨림 증세가 시작됐다. A 군은 말했다. “친구들이랑 얘기할 땐 입만 바라봐요. 놀릴까 봐. 교실 문만 열면 무서워요.”

익명 메신저로 학생들과 대화한 김주연 상담사(대구 달서구 청소년상담복지센터)는 “저학년들은 말에서 받는 상처가 더 깊다. 치유 기간도 나이와 반비례해 오래 걸린다”고 했다.

언어폭력은 다른 폭력의 발화점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쁜 말에 시달린 학생 5명 중 4명은 실제로 맞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지속적인 따돌림 경험을 호소한 학생도 절반이 넘었다. 2012년 11월 강원 춘천시의 한 중학교 화장실에선 2학년 B 군(15)이 흉기를 휘둘러 동급생의 이마와 목에 큰 상처를 냈다. B 군의 손에서 시작된 재앙의 발단은 말 한마디. 피해 학생이 스마트폰 사진 공유 서비스 애플리케이션에 B 군을 지칭해 장난 삼아 올린 욕설 한마디였다.

지난해 국립국어원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97%가 ‘비속어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역시 지난해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학교에서의 욕설 사용실태 및 순화대책’ 보고서를 보면 2010년 10월 기준으로 ‘욕설을 전혀 쓰지 않는다’고 답한 초중고교생은 5.4%에 불과했다. 욕설을 하는 이유로는 초등생의 경우 ‘남들이 해서’(29.6%)가 가장 많았고 중고생은 ‘습관이 돼서’(중 29.4%, 고 33.4%)를 1순위로 꼽았다. 어릴 때 보고 배운 나쁜 말은 시간이 지나면 습관으로 고착돼 바로잡기가 더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초등학교 4학년 정도를 나쁜 말 교정 시점의 마지노선으로 본다. 정윤경 가톨릭대 심리학과 교수는 “초등학교 5학년만 돼도 왜 욕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인지하고 걸러낼 능력이 있다. 하지만 그 전에는 욕설에 담겨 있는 폭력이 온몸에 전해진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이를 교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백병원의 우종민 박사(정신건강의학과)는 “아이들은 말로 세상을 본다. 나쁜 말을 자주 들으면 세상을 보는 시각과 감정 표현 방식 자체가 어두워진다”고 했다.

뇌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가천대 의대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는 “일단 전두엽에 깊숙이 각인된 언어 습관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 고치기 힘들기에 나쁜 말 바로잡기는 반드시 어릴 때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진우 niceshin@donga.com·김희균 기자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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