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부족한 ‘성적’보다 숨은 ‘재능’에 주목하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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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아버지가 말하는 ‘내 자녀의 진로, 이렇게 지원했다’

자녀가 선택한 길이 자신만의 재능을 발휘하면서 행복한 삶도 이룰 수 있는 길인지를 깊이 고민하는 아버지는 의외로 많지 않다. 적잖은 아버지는 자신이 못 이룬 꿈을 자녀가 대신 실현하기를 기대하면서 특정 진로를 자녀에게 강권하는 모습을 보인다. 아버지 관점에서 익숙하지 않은 분야이거나 신분이 불안정해 보이는 진로를 자녀가 선택하려 하면 무조건 막아서기도 한다.

여기, 자녀의 미래를 진심으로 고민한 아버지들이 있다. 자신에겐 비록 익숙하지 않은 진로이지만 자녀의 재능과 행복한 삶을 위해 자녀에게 진정 아름다운 진로를 안내한 이들 아버지는 어떤 고민과 노력을 해 왔을까.

지난해 가을 국내 패션계의 대표적 행사인 서울패션위크 전야제 무대에 모델로 오른 남지현 양(18·서울 한림연예예술고 패션모델과 3)의 아버지 남기춘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51)와 최근 일본에서 만화가로 데뷔를 앞둔 임규현 씨(23·일본 도쿄공예대 만화학과 3 휴학)의 아버지인 임정묵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50)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자녀가 원하는 진로… 단점보단 딸의 장점에 주목”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런웨이를 활보하는 패션모델은 요즘 수많은 젊은이가 선망하는 직업 중 하나. 하지만 모델이란 진로가 남의 얘기가 아닌 ‘내 자녀’의 경우가 됐을 때 부모의 태도는 다르다. 반가움보다는 현실적인 고민이 더 앞서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딸 지현 양이 중3 때 패션모델이 되고 싶다고 말했을 때 남 교수 역시 여러 걱정이 밀려 왔다. 평생 인지신경과학과 심리학을 연구해 온 학자로서 패션모델 분야는 이렇다할 정보도, 인맥도 없는 그저 낯선 분야였던 것. 또 딸이 아버지를 따라 학자의 길을 걸으면 좋겠다는 기대도 내심 있었다.

“패션모델 분야를 더 알아보니 업계의 범위가 넓지 않고 폐쇄적 성격이 강해 소위 ‘줄’이나 기획사를 잘 잡아야 하는데 ‘10년 전속계약’ 같은 부당한 계약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딸을 과연 이 분야에 보내도 될지 우려가 됐죠. 주변 교수들에게도 조언을 구해 보니 ‘아마 힘이 들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았죠.”(남 교수)

남 교수가 마음을 바꿔 딸의 꿈을 지지하는 부모가 된 것은 딸이 패션모델의 꿈을 접고 일반고에 진학을 했을 때의 경우를 생각해 본 것이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유독 분명한 성격인 딸이 일반고에 진학한다면 제대로 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을지를 확신할 수 없었던 것. 차라리 남들 앞에 잘 나서고 대담한 자신의 성격을 활용하면서 패션모델로서의 능력을 펼치는 것이 훨씬 행복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아이가 가려고 하는 분야의 단점에 주목하기보다는 아이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부모가 원래 기대했던 길이 아니더라도 아이의 기질에 딱 맞는 길이라면, 그 장점을 경쟁력으로 믿고 적극 밀어주는 게 아버지의 역할 아닐까요.”(남 교수)

“아버지 역할? 관찰하다 결정적 순간에 도움 주는 것”

자녀의 앞길에 대해 좀처럼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는 자칭 ‘방임형’ 학부모인 임 교수의 경우는 어땠을까. 임 교수야말로 자녀에게 잘 맞는 진로를 찾아주기 위해 주의를 기울이며 자녀를 관찰했다. 자녀가 돌발적으로 보여 주는 엉뚱한 행동과 반응에서도 진정한 적성을 발견해 내려 했던 것.

“아들이 중2 때 어느 날부터 친구를 따라 만화를 그리는 모습을 봤어요. ‘웬 만화를 그렇게 그리느냐’고 물으니 ‘아빠, 만화는 예술이에요’라며 제법 당돌하면서 진지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았죠. 그 순간 이것이 아들의 재능에 가까운 분야라 생각해 미술 공부를 직접 권했습니다.”(임 교수)

자녀의 재능을 포착하는 것만큼이나 이를 본격적으로 계발할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도 중요한 부모의 역할. 다만 부모의 지나친 관여에 자녀는 부담을 느낄 수 있으므로 자녀에 대한 지원은 조용하면서도 치밀한 것이 좋다.

임 교수는 아들 규현 씨가 고3 때 국내 한 예술대학에 지원했다 떨어져 크게 낙담했을 때 아들이 한국이 아닌 곳에서도 꿈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고 싶었다. 그는 아들과 5일 동안 일본여행을 함께한 뒤 우연히 들르는 듯한 방법으로 만화학과가 있는 대학을 찾아갔고, 아들이 자기 실력을 권위자에게서 객관적으로 평가받아 볼 수 있는 즉석 기회도 마련해 주었다.

“아버지는 평소 힘을 빼고 자녀를 관찰하다가 결정적 순간에 강한 힘으로 자녀를 밀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벽에 부딪혔을 때는 다른 돌파구를 마련해 주면서 자녀가 자신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조용하지만 치밀한 지원을 해 주는 게 아버지가 할 일이겠지요.”(임 교수)

글·사진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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