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현충일]정부 무관심 속 아버지는 홀로 누워계셨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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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때 전사 김찬중 이병 60여년만에 딸과 재회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6·25전쟁 참전용사 고 김찬중 이병 묘역에는 60여 년간 가족의 발길이 닿지 않았다. 가족들은 이곳에 김 이병이 묻혀 있는 줄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나라를 구하려고 목숨을 바친 군인의 행방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정부의 무관심 때문이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김옥 할머니(70)의 아버지 김 이병은 “나라가 위급한데 나만 살 수 없다”며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군에 입대했다. 젊은 아내가 부둥켜안으며 말리고, 목소리를 높여 싸우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버지가 친구와 함께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을 떠나는 뒷모습이 김 할머니가 일곱 살 때 본 아버지에 대한 마지막 기억이다.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김찬중 이병의 유해. 김옥 할머니는 아버지 묘역을 사진으로 먼저 접하고 정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묘비에는 ‘김 일등병’이라고 적혀 있지만 국방부 공식 기록에 김 씨는 ‘이병’으로 남아 있다. 유엔기념공원 제공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된 김찬중 이병의 유해. 김옥 할머니는 아버지 묘역을 사진으로 먼저 접하고 정부에 대한 원망과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입을 열지 못했다. 묘비에는 ‘김 일등병’이라고 적혀 있지만 국방부 공식 기록에 김 씨는 ‘이병’으로 남아 있다. 유엔기념공원 제공
아버지가 떠나고 한 달여 뒤 어머니는 폭격으로 숨졌다. 김 할머니는 “당시 하늘 위로 전투기가 ‘쌕쌕’거리며 무섭게 날아다녔다”며 “어머니가 폭격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어른들께 들었다”고 기억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조부모 손에 이끌려 부산으로 피란길을 떠났다. 세 살 터울인 남동생은 제대로 먹지 못해 굶어 죽었다.

짧은 순간에 전쟁고아가 된 할머니는 친척집을 오가며 컸다. 아버지와 함께 입대했던 친구는 살아 돌아왔지만 “아버지가 전투 중에 죽었다. 시신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할머니는 “어려운 형편에 갖은 고생을 하며 살다 보니 아버지에 대한 애틋한 기억도 희미해졌다”며 “어머니와 남매를 두고 전쟁터로 떠난 아버지를 원망도 많이 했다”고 말했다.

휴전 뒤 당시 국방부는 김 이병이 6·25전쟁에서 전사했다며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유해를 찾지 못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셨다.

할머니는 아버지가 언제 어디서 숨졌는지 몰라 제사도 지내지 못했다. 할머니도 나이가 들수록 아버지에 대한 원망보다는 유해도 수습하지 못한 미안함이 더 커졌다. 8년 전 마지막 희망을 걸고 전사자 유해를 찾아주는 국방부 유해발굴사업에 신청했다. 오매불망 아버지 소식을 기다렸지만 매년 “아버지 유해를 찾지 못했다. 열심히 찾아보겠다”는 답만 돌아왔다.

현충일을 앞둔 이달 초 할머니는 아버지의 유해가 부산 유엔기념공원에 있다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대한민국카투사연합회가 한미동맹 60주년을 맞아 기념공원에 안장된 카투사의 유가족을 초청하려고 수소문하던 중 할머니 연락처를 찾은 것. 육군으로 입대한 줄 알았던 아버지는 미2사단 소속 카투사로 입대해 1950년 9월 낙동강 전투 때 전사한 뒤 이곳에 안장돼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를 부산에 모셔놓고 60년 동안 왜 안 가르쳐 줬느냐”며 오열했다. 할머니뿐 아니라 카투사 고 반봉영 씨의 아들 반종수 씨(75)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만 모셔왔던 아버지가 유엔기념공원에 묻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국가보훈처와 국방부가 국군 전사자에 대한 관리를 허술하게 한 탓이었다. 정부는 전쟁 직후 카투사 전사자 36명이 유엔이 관리하는 유엔기념공원에 안장됐는데도 유가족에게 유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통보하고 60년 동안 확인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보훈처는 김 할머니 사례를 알게 된 뒤 이곳에 묻힌 카투사 중 무명용사 5명을 제외하고 나머지에 대해 유가족이 있는지 찾고 있다. 보훈처 관계자는 “카투사 유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몰라서 벌어진 일로 앞으로 관리 주체가 달라 보훈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없도록 하겠다”며 “국가유공자에 미등록된 카투사 전사자의 유족을 찾아 하루빨리 예우를 다하겠다”고 밝혔다.

현충일인 6일 김 할머니는 유엔기념공원을 찾아 60여 년 만에 첫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6·25#김찬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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