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방사능 아스팔트’ 실체 모를 공포속에 1년째 떠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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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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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월계동→상계동 폐수영장→노원구청 주차장→경주 방사성폐기물처리장으로

‘무게=806t, 나이=12세(추정), 위험요인=대기 평균 수치보다 20배 많은 방사능을 뿜어냄.’

공상과학 영화에 등장하는 괴물의 신상명세가 아니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노원구청 뒤 공영주차장에 마련된 임시보관 건물에 1년째 모습을 숨기고 있는 폐아스팔트 얘기다. 아스팔트는 지난해 10월까진 월계동 주택가 도로에 깔려 있었다. 한 시민이 아스팔트에서 방사능이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한 뒤 11월 주민들의 반발로 도로에서 뜯겨났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당시 “인근 주민들이 받은 연간 방사선량은 안전 범위 안”이라고 발표했지만 주민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대책위원회에 ‘방사능 탓에 병에 걸렸다’는 청원서를 낸 주민이 몰렸다. 주부 김모 씨(48·여)는 “월계동에서 살면서 3차례나 자연 유산했다”며 “방사능 탓이었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올 9월 서울시가 역학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대상 8875명의 1.1%에 해당하는 102명이 연간 법정 허용량인 1mSv(밀리시버트·방사선이 우리 몸에 미치는 영향 정도를 표시하는 단위) 넘게 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1만∼10만 명 중 1명이 암에 걸릴 수 있는 수준의 방사선량이다. 서울시는 “방사능 오염의 잠복기를 고려해 2∼10년간 추적 조사하겠다”면서도 “확률로만 따지면 번개에 맞아 사망할 확률(600만분의 1)보다 낮아 ‘문제가 있다 없다’ 할 수 없는 애매한 결과”라고 밝혔다.

6일 기자가 만난 월계동 주민들 가운데서도 “방사능의 위력이 과대평가됐던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강모 씨(69)는 “땅값이 떨어질까 봐 들고일어났지만 실제로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생각하는 주민들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당국의 조사 결과와 별개로 폐아스팔트는 ‘괴물’ 취급을 받으며 떠돌아다녔다. 노원구는 뜯어낸 아스팔트를 상계동 마들근린공원의 폐수영장으로 옮겼지만 열흘도 지나지 않아 구청 뒤 공영주차장으로 옮겨놔야 했다. 공원 인근 주민들이 반발하고 나선 탓이다.

이번엔 구청 주변 주민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상계동 주민들은 “월계동 주민 살리자고 상계동 주민은 죽이는 것이냐”며 항의했다. 노원구는 폐아스팔트를 여러 겹으로 밀봉하고 “방사능이 유출되지 않도록 안전하게 보관하겠다”며 주민들을 달랬다.

해결된 듯 보였던 갈등은 폐아스팔트를 어디서 분류할지를 놓고 다시 불거졌다. 폐아스팔트를 일반폐기물과 10Bq(베크렐·방사성 물질의 방사능 세기를 나타내는 단위) 이상의 중저준위 폐기물로 분류하는 작업엔 한 달 이상이 걸린다. 방사능 오염을 우려해 분류작업 장소를 내주려는 곳이 없었다. 인적 드문 전방 군부대를 내달라는 요청에 국방부도 난색을 표했다. 어렵사리 공릉동 한국전력 중앙연수원 내 원자력연구소를 분류 장소로 낙점했지만 이 역시 인근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결국 폐아스팔트는 임시보관 건물에 그대로 남겨졌다.

갈등의 불씨는 아직 남아있다. 중저준위 폐기물은 이달 중하순 경북 경주시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로 옮겨지지만 일반폐기물로 분류된 폐아스팔트 328t의 대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현행법상 해당 폐기물을 처리할 근거가 없어 노원구는 환경부의 법령 검토를 기다리고 있다. 노원구 관계자는 “일반폐기물과 똑같이 처리하라는 결정이 나오면 매립지 선정을 놓고 다시 갈등이 일어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조건희 기자 becom@donga.com
#월계동#방사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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