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품에 안긴 ‘서울 3大 요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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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1970년대 ‘밀실정치의 무대’였던 서울의 3대 요정(料亭) 오진암 대원각 삼청각. 3곳은 모두 ‘걸어 들어오는 사람은 있어도 소형차를 타고 오는 사람은 없다’는 소리를 듣던, 권력자들이 즐겨 찾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런 곳이 모두 일반 서민들이 위로받고 휴식을 할 수 있는 문화·종교시설로 바뀌게 됐다.

국토해양부가 16일 ‘2012년 한옥건축지원 사업’ 대상으로 오진암(梧珍庵)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오진암은 앞으로 전통문화시설로서 한옥의 아름다움을 알려주는 전시장으로 활용된다.

대원각은 1997년 길상사라는 사찰로 변신했고, 삼청각은 2000년 서울시 지정 문화시설이 된 뒤 국내외 관광객용 한국전통문화 체험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오진암은 마당에 큰 오동나무가 있다 해서 이름이 붙여진 서울시 1호 등록식당이다.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지만 식당으로 문을 연 것은 1953년. 이후 협객 김두한의 단골집으로 유명세를 탔고,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박성철 부수상이 만나 7·4 남북공동성명을 사전 논의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오진암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은 문을 연 지 57년째가 되던 2010년 8월. 당시 소유주인 건설업체가 비즈니스호텔을 짓겠다며 오진암을 철거했다. 이에 종로구청은 종로구 익선동에 있던 오진암 한옥 건물 중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대문, 화장실 등을 부암동으로 옮겨 이축하기로 했다. 오진암이 옮겨갈 부암동도 역사적으로 의미가 많은 곳이다. 오진암의 신축지 인근에는 형 수양대군에게 밀려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하고 비명횡사한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의 집터인 무계정사가 있다. 구한말 소설가 현진건도 이 무계정사 터에 머물렀다.

대원각은 주인이자 월북한 천재시인 백석의 연인이었던 고(故) 김영한 씨가 고 법정 스님에게 시주를 하면서 길상사로 변신했다. 처음에는 사양하는 법정 스님을 10년에 걸쳐 설득해 뜻을 이룬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7년 12월 14일 길상사가 개원하던 날 김 씨는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하나와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받았다. 그리고 2년 후 그곳에서 타계했다.

1972년 남북적십자회담 및 한일회담의 막후 협상 장소로 이용됐던 삼청각은 유신체제가 삼엄했던 4공화국 시절 요정정치의 본부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1980년대 접어들어 경영난을 겪다가 1990년 ‘예향’이라는 이름의 일반 음식점으로 전환했지만, 1999년 12월 결국 문을 닫았다. 이후 서울시가 2000년 5월 삼청각을 인수해 문화시설로 지정한 뒤 이듬해에 리모델링을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이후 파라다이스 그룹의 위탁경영을 거쳐 2009년 7월부터 세종문화회관이 운영을 전담하고 있다.

현재는 누구나 들러볼 수 있는 참살이(웰빙) 문화공간으로,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알릴 수 있는 전통문화 체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요정정치의 발원지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요정들이 급속히 사라지는 추세다. 2006년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단골인 ‘긴류’가 문을 닫아 화제가 됐고, 자민당이 정권을 민주당에 빼앗긴 이후에는 요정들이 ‘줄도산’을 하다시피 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동영상=근대 요정 ‘오진암’, 역사속으로...
#오진암#대원각#삼청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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