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 환자에도 ‘미란다 원칙’ 적용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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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前 구제절차 설명 의무화… 대법 ‘인신보호제’ 대폭 강화

1987년 30대 초반의 나이로 정신요양원에 들어간 권모 씨는 20여 년간 전국의 정신병원과 요양원을 옮겨 다녔다. 제대한 뒤 취업을 하지 못한 채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면서 경제 문제 등으로 갈등이 잦아지자 아버지가 요양원에 강제로 입원시킨 것. “충동적이고 감정기복이 심하며 공격적인 언행을 보인다”는 진단 결과도 한몫했다. 권 씨는 계속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입원조치에 항의하고 퇴원을 요청했지만 아버지는 거부했다. 권 씨는 지난해 11월 인신보호제도를 알게 된 뒤 법원에 정식으로 인신보호를 청구했다. 법원은 “권 씨를 더이상 강제수용할 이유가 없다”며 수용 해제를 명령했다.

앞으로 정상적인 사람을 정신병자로 취급해 부당하게 감금하는 사례가 크게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잘못된 행정처분이나 재산 분쟁, 종교 갈등 등으로 억울하게 정신병원 등에 수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올 하반기(7∼12월) 인신보호제도를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21일 밝혔다.

대법원은 정신병원이나 요양원, 기도원 등에 수용되는 사람들에게 인신보호제도를 반드시 알리도록 인신보호법을 개정하는 방안을 법무부와 협의해 추진하기로 했다. 강제 수용되는 환자에게 자신의 권리를 알려주는 일종의 ‘미란다 원칙’이 적용되는 셈이다. 또 수용시설 내부에 인신보호 절차를 안내하는 포스터를 붙이고 법원 국선변호인이 관내 정신병원 등을 순회하며 부당한 감금이 없는지 살피게 하는 방안도 포함하기로 했다.

인신보호제도는 정신병원 등에 수용된 사람이 “억울하게 갇혔으니 강제수용을 풀어 달라”고 청구하면 법원이 이 사람의 수용이 정당한지 가려주는 제도다. 법원은 사건이 접수되면 2주일 안에 심문기일을 정한 뒤 정신병원장과 수용된 사람을 함께 법정에 출석시켜 수용이 정당한지 판단하게 된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고현국 기자 mck@donga.com
#정신병원#정신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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