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19대 국회로 넘겨라”… 선거前 “대책 마련”서 강경선회시위대 “국회 occupy” 진입… 경찰 물대포 발사 114명 연행
시민사회단체와 농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28일 오후 1만 명이 참가한 가운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산업은행 앞에서 ‘한미 FTA 저지 2차 범국민대회’를 열었다. 일부 대회 참가자들이 국회로 불법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물대포를 쏘며 강제 해산시키고 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30여 개 시민단체가 결성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가 28일 주최한 집회에서 일부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넘어 국회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은 물대포를 쏘며 67명을 연행했다. 시위대가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 사전 경고 없이 물대포를 사용하기로 한 방침을 경찰이 21일 발표한 뒤 실제로 물대포를 사용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불법시위에 물대포로 대응
범국본은 이날 오후 2시부터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산업은행 앞에서 2500여 명(경찰 추산)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FTA 국회 비준 반대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금융소비자협회와 금융소비자권리연석회의 등이 오후 1시부터 진행한 ‘여의도 점령 시위대’도 이 집회에 합류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오후 3시경 행사가 끝나자 여의도 한강공원으로 향하는 왕복 4개 차로를 점령하고 불법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을 하던 시위대는 방향을 틀어 국회 쪽으로 향했다. 일부는 담을 넘어 국회 진입을 시도했다. 국회사무처는 곧바로 출입통제 조치를 내렸다. 경찰도 서둘러 북문을 차단한 뒤 오후 3시 37분부터 4시 18분까지 각각 30초∼1분씩 세 차례 물대포를 발사했다.
경찰은 1차로 물대포를 발사하기 전에는 해산명령과 경고방송을 했다. 하지만 시위대가 해산하지 않자 2, 3차 때는 경고방송 없이 바로 물대포를 발사했다. 국회에 진입한 28명은 국회의원동산 등지에서 구호를 외치다 경찰에 전원 연행됐다. 경찰은 국회 밖 시위대 39명까지 총 67명을 연행했다.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 이광석 전농 의장, 박자운 한국대학생연합 의장, 윤금순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 집회를 주도한 지도부들도 대거 연행됐다. 경찰은 연행자들을 구로경찰서 등 서울시내 7개 경찰서에 분산해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회 주변 집회는 강력 대처해야 입법기능을 보호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연행했다”고 설명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회 안은 물론이고 국회 주변 반경 100m 이내 지역에서는 집회를 열 수 없다. 이날 오후 연행자들이 호송된 성동경찰서와 은평경찰서 등을 항의 방문한 시위대 47명도 집시법 위반 혐의로 추가 연행됐다. 이에 따라 연행자는 모두 114명으로 늘었다. 시위대는 산업은행 본점 앞에 다시 집결해 집회를 이어가다 오후 7시에 자진 해산했다. ▼ 강경해진 민주 “FTA 재협상 없인 통과 불가” ▼
이에 앞서 경찰청은 ‘도로 점거 등 불법행위 대응 법 집행력 강화 방안’을 전국지방경찰청에 내려 보내 시행하도록 했다. 이 방안에는 시위대가 장시간 도로를 점거하며 폴리스라인을 침범하면 바로 물대포를 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지금까지는 3차례 구두 경고 뒤 물대포를 쏘도록 해왔지만 시민 불편이 크다는 지적에 따라 대응을 강화했다.
○ FTA 국회 처리는 불투명
민주당은 이날 “재협상 없이 통과도 없다. 한미 FTA 비준안은 19대 국회에서 다시 심판해야 한다”고 밝혔다. 10·26 재·보궐선거 전만 해도 비준안 통과의 조건으로 미국과의 재협상보다 농축수산업 피해 대책 마련에 무게를 뒀던 데 비해 한층 강경해진 것이다.
야5당(민주당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 대표들은 이날 국회에서 만나 “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과 다시 협상하고 그 결과를 기초로 19대 국회에서 협정 파기 여부를 포함해 한미 FTA 비준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31일에는 한미 FTA 비준안 처리를 막기 위한 야5당 공동 의원총회를 열기로 했다.
민주당은 “미국과 재협상해 FTA 조항 중 투자자 국가소송제도(ISD)라도 폐기해야 비준동의안을 처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ISD는 국가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당한 외국 투자자가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에 해당 국가를 제소할 수 있는 제도다. 민주당은 ISD가 공공정책을 위협하는 독소조항이라고 보고 있다. 여야는 30일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와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참여해 ISD 문제에 대해 3시간 동안 ‘끝장토론’을 벌이기로 했다.
야당은 한미 FTA를 내년 총선의 핵심 이슈로 부각해 ‘이명박 심판론’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 지도부는 한미 FTA 처리 문제에서 ‘야성(野性)’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제1야당 입지가 급속도로 약화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에 빠져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는 ‘나쁜 FTA’,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한미 FTA는 ‘좋은 FTA’라는 프레임으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민주당은 27일부터 전파를 탄 정부의 한미 FTA 홍보 TV 광고에 ‘경제적 실익을 중심에 놓고 협상을 진행했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육성과 영상이 담기자 “한미 FTA는 노무현 정부 때 시작된 협상이지만 그때의 ‘좋은 FTA’가 현 정부에서 미국에만 유리하도록 이익 균형이 깨진 ‘나쁜 FTA’로 변질됐다”며 광고 중단을 요구했다.
여당 내 기류는 복잡하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강행 처리를 시도하겠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반면에 황우여 원내대표는 협상의 끈을 놔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당정청은 29일 오전 고위 당정청회의를 열어 한미 FTA 비준안의 국회 처리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여권은 당정청회의에서 “이번 정기국회에서 처리하지 못하면 한미 FTA는 물 건너간다”는 문제의식 아래 다음 주초를 ‘결전의 날’로 잡고 비준안을 처리하는 방향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김태웅 기자 pibak@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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