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곽노현 공판서 이례적 프레젠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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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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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교과서를 보면… 사전약속 없어도 사퇴 대가로 돈주면 유죄”
‘사전합의 없고 선의로 돈준것’ 郭측 주장에 불리한 해석
재판부 “꼭 따르겠다는 뜻 아니나… 대가성 여부가 핵심”

후보자 매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57·사진)에 대한 첫 공판이 17일 열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김형두) 심리로 진행된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는 이례적으로 법정에서 다투고 있는 법 조항 해석과 관련해 빔프로젝터를 통해 준비해온 10장 안팎의 A4용지에 담긴 자료들을 보여주며 직접 설명했다. 김형두 부장판사는 “국내에 출간된 여러 권의 공직선거법 관련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면 피고인에게 적용한 공직선거법 232조 후보자에 대한 매수 및 이해유도죄 1항 2호에 대해 ‘사전 약속과 관계없이 후보자 사퇴 대가로 금품을 제공하기만 하면 범죄가 성립한다’고 해석하고 있다”며 “일본 대법원 판례에서도 ‘후보자 사퇴를 한 것이 이익의 제공과 관계가 없더라도 건넨 금품의 대가성만 입증하면 된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는 후보자였던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53)에게 2억 원을 준 사실을 이미 시인하고 이에 대한 사전합의가 없었다는 점을 주로 다투고 있던 곽 교육감 측에게는 불리한 해석이다. 곽 교육감이 실무자 사이의 합의사실을 몰랐더라도 그를 처벌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본 검찰 측의 주장에는 무게가 실리게 되는 것이다. 김 부장판사는 “재판부가 이 해석을 따른다는 뜻이 아니라 변호인 측에서 사전합의가 있어야만 죄가 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어 논점을 분명히 하자는 차원에서 설명한 것”이라며 “이 사건의 핵심은 사전합의 여부가 아니라 대가성 입증”이라는 것을 분명히 했다.

재판부의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곽 교육감과 박 교수는 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는 등 긴장하는 표정이었다. 박 교수 측 변호인인 김재협 변호사는 “이미 사퇴한 후에 돈을 준 것은 사퇴의 대가로 볼 수 없으므로 선거 이전에 금품 제공에 대한 약속이 있어야 범죄가 된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은 “재판부에서 설명한 해석대로 사전합의는 범죄의 구성요건은 아니나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한 중요한 정황증거가 된다”고 밝혔다.

이날 카키색 수의를 입고 수척한 모습으로 법정에 선 곽 교육감은 “선의로 돈을 줬다는 진실을 법이 지켜줄 것”이라며 “꼬리 자르기 같아 내키지 않고 부끄럽지만 지난해 5월에는 이면합의 사실을 전혀 몰랐다”며 기존의 주장을 반복했다. 미리 A4용지에 진술 내용을 준비해온 곽 교육감은 공판 중에도 부지런히 필요한 내용을 기록하는 모습이었다.

머리가 희끗해진 박 교수는 모두(冒頭)진술에서 “강경선 한국방송통신대 교수에게 ‘곽 교육감 측 인사들이 서로 당초 약속한 것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걸 보니 사기꾼에게 당해 자살한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고 말했는데 언론에는 내가 자살하려고 했다는 기사로 뒤덮였다”며 “재판을 통해 명예를 회복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단일화 당시 선거비 보전 명목의 경제적 지원에 대해 내용을 공유했다고 생각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곽 교육감을 직접 만나보니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하더라”며 “처음에는 많이 원망했지만 결과적으로 곽 교육감도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돼 죄송스럽다”고 덧붙였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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