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술판-노래… 청계천 텐트… 시위대 놀이터 된 서울 도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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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1시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 인적이 끊긴 도심에서 갑자기 민중가요가 울려 퍼졌다. 전날 오후부터 이 광장에서 반값 등록금 집회를 벌여 온 대학생 100여 명이 갑자기 앰프를 켜고 음악을 튼 것.

경찰이 순간 측정한 최대 소음지수는 89dB. 보통 공사장에서 사용하는 굴착기 소리가 90dB 정도다. 소음진동규제법상 야간에 허용되는 최대 소음지수는 70dB이다. “소음 허용지수를 넘어섰다”는 경찰의 경고방송에도 학생들은 공연을 강행했다. 오전 1시 50분경 ‘시끄러우니 볼륨을 줄이자’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지만 공연은 30분 동안 더 진행됐다. 공연이 끝나고도 학생들은 광장에서 춤을 추며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인근 도보에서는 소주병이 오가는 술판도 벌어졌다. 전날 집회에 참여한 학생 2500여 명 중 일부가 서울 한복판의 광장을 ‘도심 MT장’으로 만든 것이다.

○ 밤새 이어진 ‘놀자판’ 시위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은 반값 등록금 도입과 대학교육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대학생 총회와 촛불집회를 지난달 29일 오후 7시 20분부터 진행했다. 수도권 대학생과 시민 2500여 명(경찰 추산·주최 측 추산 30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등록금 인하를 한목소리로 요구했다. 등록금 문제와 관련한 대학생들의 요구안 선언과 퍼포먼스, 기성 세대와 함께 벌이는 ‘토크 콘서트’ 등의 순서로 진행되던 집회는 오후 10시 20분경 별 충돌 없이 무사히 끝났다.

하지만 행사가 종료되자마자 집회 참가자 중 700여 명이 도로로 뛰어나왔다.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사거리까지 거리행진을 강행한 이들은 왕복 8차로를 순식간에 점거했다. 경찰은 78개 중대 6000여 명을 배치하고 청계광장 주위를 차벽으로 둘러싸고도 도로 점거를 막지 못해 명동과 광화문 등 도심 일대에서 시위대와 격한 충돌을 벌였고 도심 교통은 두 시간 넘게 마비됐다. 마지막까지 남은 집회 참가자들은 명동 롯데백화점 앞으로 이동해 왕복 8차로 일부를 점거하고 늦은 밤까지 농성을 이어갔다.

경찰은 이날 집회 참가자를 해산시키기 위해 물대포를 수차례 사용했다. 반값 등록금 관련 집회에서 물대포가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찰의 거듭된 해산명령에 불복한 대학생 49명은 결국 현장에서 연행돼 성북경찰서와 강북경찰서 유치장 등에서 밤을 보내고 30일 저녁까지 조사를 받았다.

청계광장에 시위 텐트-쓰레기 30일 새벽 서울 청계광장 일대에 ‘반값 등록금’ 시위대가 버린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광장 위로는 시위대가 설치한 텐트가 늘어서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청계광장에 시위 텐트-쓰레기 30일 새벽 서울 청계광장 일대에 ‘반값 등록금’ 시위대가 버린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 광장 위로는 시위대가 설치한 텐트가 늘어서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경찰과의 충돌 끝에 청계광장으로 돌아온 학생 300여 명은 광장에 남아 있던 다른 학생들과 합류해 밤새 ‘촛불 야간자율학습’ 행사를 이어갔다. 이들은 광장과 인근 보도에 텐트 30여 동을 설치했다. 일부는 텐트에서 잠을 청했지만 일부는 술을 마시며 공연을 이어갔다.

학생들은 오전 5시가 돼서야 텐트를 걷어냈다. 텐트와 쓰레기를 모두 치운 뒤에는 ‘2MB(이명박 대통령) OUT’ ‘등록금 반값 넘어 무상’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촬영한 뒤 철수했다.

○ 피해는 시민 몫

밤새 이어진 집회와 공연에 인근 상가와 호텔은 큰 불편을 겪었다. 청계광장 인근은 특히 외국인 관광객이 묵는 관광호텔이 많은 지역. 인근 K호텔 로비에는 새벽까지 ‘저게 대체 무슨 행사냐’고 묻는 외국인 투숙객의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24시간 문을 여는 인근 커피숍 관계자는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이 화장실에서 얼굴과 몸을 씻는 등 마음대로 행동해 다른 손님들이 불편을 겪었다”고 말했다. 집회를 지켜보던 한 시민은 “자신들의 요구사항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술 마시고 놀려고 집회를 하는 것 같다”며 “시끄럽고 불쾌하다”고 지적했다. 112신고센터로도 ‘도대체 무슨 일로 이렇게 시끄러운 것이냐’고 묻는 민원 전화가 폭주했다.

사실상 유명무실한 소음 기준 때문에 새벽까지 스피커를 틀어놓고 공연을 하는 상황에서도 특별한 제재 조치는 없었다. 특히 밤 12시 이후부터는 집회가 아닌 문화제로 적용됐기 때문에 경찰 단속이 사실상 무의미했다. 경찰 관계자는 “집회가 아닌 문화제이다 보니 집회 시위에 관한법을 경찰이 직접 적용할 수가 없었다”며 “구나 피해를 당한 상가에서 소음 규정 위반으로 고소나 고발을 하면 벌금형이 내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목요일 저녁을 맞아 ‘특수(特需)’를 기대했던 택시 운전사들도 울상이었다. 한 콜택시 업체 관계자는 “청계광장 인근에서 콜택시를 요청하는 승객이 많았는데 시위대가 도로를 점거하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하고 그냥 돌아 나온 택시가 많았다”고 전했다. 이날 도로에서 만난 한 택시운전사는 “을지로입구역 사거리가 모두 통제돼 길에서 두 시간을 허비했다”고 하소연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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