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래동 전봇대엔 음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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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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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공소 골목 곳곳에 QR코드

철공소가 몰려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최근 QR코드를 이용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 ‘스피어스’가 열리고 있다. 25일 오후 문래동에서 이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한 미술감독 장민승 씨(오른쪽)와 DJ솔스케이프(왼쪽)가 전봇대 앞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함께 참여한 뮤지션 정재일 씨는 군복무 중이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철공소가 몰려 있는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 최근 QR코드를 이용한 공공 예술 프로젝트 ‘스피어스’가 열리고 있다. 25일 오후 문래동에서 이 프로젝트를 함께 기획한 미술감독 장민승 씨(오른쪽)와 DJ솔스케이프(왼쪽)가 전봇대 앞에서 음악을 듣고 있다. 함께 참여한 뮤지션 정재일 씨는 군복무 중이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이게 뭐여?”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1가 20번지. 소규모 공장이 밀집해 있는 이 지역의 전봇대 앞에 철공소 근로자로 보이는 40대 남성 3명이 서 있었다. 전봇대에 붙은 종이에는 검은색 무늬가 불규칙하게 배열돼 있었다. QR(Quick Response)코드였다. 암호 같은 이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 옆에는 청년 2명이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이 청년들은 “전봇대 QR코드에 스마트폰을 대니 음악이 나온다”며 감탄했다.

롯데백화점과 신세계백화점, ‘타임스퀘어’로 대표되는 영등포는 서울을 대표하는 부도심 중 한 곳이다. 사람들로 넘쳐나 늘 복잡한 동네지만 신도림역 방향으로 조금만 걷다보면 허름한 옛 건물, 철공소, 목공소가 즐비하다. 낮에는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넘쳐나고 밤에는 가로등 불빛 아래에도 인적이 드물 정도로 삭막하다. 옛 공장 모습은 1970년대를 연상케 할 정도다.

최근 문래공원, 문래철재상가 거리, 버스정류장 등 문래동1가 반경 3km 이내 지역을 중심으로 전봇대에 QR코드가 붙고 있다. QR코드는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정보를 읽을 수 있는 디지털 코드.

미술감독 장민승 씨(33)와 뮤지션 정재일 씨(29), DJ솔스케이프(33)가 문래동 철공소를 배경으로 진행하는 공공 예술 프로젝트 ‘스피어스’로 QR코드를 붙이고 있다. QR코드를 스마트폰에 대면 정 씨가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과 DJ솔스케이프가 만든 일렉트로닉 음악이 흘러나온다. 눈으로는 녹슨 합판과 철근 다발을 보고 귀로는 음악을 들으며 명상을 하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기획 의도. 이들은 서울시 산하 기관인 서울문화재단이 후원하는 공공프로젝트 ‘문래 아트 플러스’에 이 프로젝트로 응모해 뽑혔다.

장 감독은 “전시회는 미술관 안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고 관람객에게 ‘이 작품은 이렇게 감상해야 한다’는 강요도 싫었다”며 “직접 체험하며 관람객들이 자유롭게 감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QR코드를 스캔하는 행위는 같을지 몰라도 눈에 보이는 공장지대 풍경이나 귀로 듣는 음악을 해석하는 방식은 각자 다르다”고 강조했다.

왜 문래동일까. DJ솔스케이프는 “옛 정취가 남아있는 공장지대에서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실험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한데 묶었다는 점이 신선했다”고 평했다.

다만 모두가 이 프로젝트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업소 전단지인 줄 알고 떼어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가 올 때는 종이가 젖어 스마트폰 스캔이 되지 않기도 한다. 장 감독은 “동네 철공소는 지역 주민에겐 치열한 삶의 현장”이라며 “그런 곳에서도 예술이 이뤄지면서 저변이 넓어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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